15. 모아나
"갈고리가 없으면 난 못해.
이게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라고!" _마우이
"갈고리 일은 유감이야..." _모아나
"그게 뭐 어때서?
갈고리가 없어도 나는 마우이야." _마우이
<모아나>
Q. 나에게 ‘마우이의 갈고리’는 무엇인가? 무엇이었나?
A. 오늘은 이 질문에 답하기가 참 싫다. 도망가려는 내 마음을 머리끄덩이 잡는 심정으로 붙들어서 글을 쓰자면, 지금 당장 내 속에서 올라오는 대답에 답한다면, 나에게 '마우이의 갈고리'는 펀딩 실적이다. 쓰고 보니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올해 초 성안당과 출판 계약을 하고 부푼 가슴을 안고 글을 썼다. 정확히는 초고를 다듬기 시작했다. 1월부터 지금까지는 계속 수정의 연속이었다. 작년 말에 <영화 톡 마음 톡톡> 와디즈 펀딩 성공 경험이 있어서 책도 홍보를 위해 펀딩을 하기로 결정했었다.
펀딩은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후원 시스템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상품으로 나올 수 있도록 미리 투자하는 방식이다. 후원자들은 펀딩 기간 동안 나중에 나올 상품에 미리 금액을 지불해서 후원을 한다. 미리 설정한 금액 이상을 펀딩 받으면 그 프로젝트는 성공이다. 설정한 비용만큼 펀딩 받지 못하면 후원자들은 후원했던 금액을 돌려받는다. 펀딩이 성공하면 후원자들이 후원한 비용을 받아서 상품을 제작한다. 상품을 보고 비용을 지불해서 구입하는 쇼핑몰과 접근 방식이 다르다. 소비자가 펀딩을 한다는 것은 이 상품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찬성하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어제 크리에이터들이 많이 이용하는 텀블벅에서 펀딩 프로젝트를 오픈했다. 오후 5시에 오픈하는 것으로 설정해놓고 기다리는데 1시부터 마음이 널뛰기한다. 기대됐다가 불안했다가. 매대에 올라가 있는 상품이 된 심정으로 노심초사다. 마치 내 마음속에 정해 놓은 펀딩률 만큼 되지 않으면 이 책이 가치 없다고 판정받는 것처럼 마음먹기라도 한 것 같다. 극단적으로 바닥을 칠 때는 '내가 쓴 책이 환영받지 못하면 나는 가치 없어'라는 이상한 회로가 작동하기도 한다. 대체로 나는 기대와 설렘 사이를 오가며 붕붕 떠있는 기분 속에 살지만 어쩐지 요즘은 호르몬의 영향인지 하루에도 열두 번씩 기분이 양 극단을 오간다.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마우이의 갈고리'는 펀딩 성공이다. 아니, 펀딩 '대박' 성공이다.
구입해서 인증하지 않으면 누가 구입했는지 모르는 인터넷 서점과 달리 펀딩은 누가 후원했는지 알 수 있다. 이게 궁금증을 해소시키고 후원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미리 느끼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느끼는 서운함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더 큰 듯도 하다. 이상한 전제다. '00은 내 책에 펀딩해야 한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전제인가. 어떤 누구도 내 책을 '당연히' 사야 하는 사람은 없다. 알면서도 기대되는 마음과 서운한 마음이 몰려온다.
첫 책인 만큼 온오프라인 서점에 풀리기 전에 내 영향력을 출판사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마음은 내 책으로 인해 출판사가 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적어도 내 책을 출판해서 피해가 되는 것은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다. 그 선한 의도만 내 스스로 알아주면 될 텐데, 좋은 결과를 내고 싶으니 기대하게 되고 그게 부담이 된다.
'아직 갈 길이 먼데, 펀딩 끝나고 정식 판매되면 어쩌려고 이러니?'라며 나를 어르고 달래고 혼내기도 하지만 펀딩 프로젝트 오픈 2일 차인 지금은 긴장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에피네프린) 수치가 높은 듯하다.
지금 나에게 억지로라도 하고 싶은 말은 "지원아 펀딩 실적과 관계없이 너는 윤지원이야. 책임지려는 그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하면 좋겠어. 후원자들의 마음까지 너의 책임은 아니란다. 후원자에게는 감사를 결과에 대해서는 인정하자. 너의 글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지는 않겠지만 누군가 한 사람의 인생에 지금 꼭 필요한 위로가 된다면 그것으로 좋지 않겠니? 윤지원의 책 덕분에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는 '한 사람'이 있을 거야."
작년 딱 이맘때 같은 질문에 썼던 질문을 읽으며 긴장됐던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그래, 갈고리가 나에게 온 기쁨을 감사함으로 누리자.' 글을 써서 책으로 세상에 보일 수 있음을 감사라고 기쁨이라고 고백한다. 때로는 다른 시간대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위로와 지혜를 전한다. 목 위까지 치솟던 긴장 곡선이 완만해졌다. 과거의 윤지원, 고마워.
2020. 8. 6 목 D-86
<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A. 갈고리가 없으면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던 마우이가 “갈고리가 없어도 나는 마우이야.”라고 고백하기까지의 심리적 거리를 생각해 본다. 예전에 갈고리는 내 껍데기들이었다. 명함, 돈, 학력, 인맥, 경력, 내 회사 등등. 한 순간에 마우이 갈고리처럼 똑 부러져 버린 그 때, 나는 세상이 무너지고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마우이처럼. 하지만 갈고리가 없어져도 나는 나였다. 갈고리 옆에 붙어 있던 것들은 갈고리와 함께 부러져 나갔지만. 이제는 갈고리가 없어도 나는 나라는 것을 믿는다. 테피티가 마우이에게 다시 선물해준 새 갈고리같은 의미는 남편이다. 지금의 나에게 선물같은 기분 좋은 나의 나약함이다. 예전의 자존심의 근원이었을지 모르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선물받은, 내 것이 아니지만 나에게 온, 그런 감사한 무엇. 내 소유를 주장할 수 없이 곁에 있는 동안 단지 감사할 뿐 이어야할 존재.
<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하루 10분, 질문을 보고 떠오른 생각을 인스타그램에 매일 정리합니다. 그 글들을 씨앗 삼아 브런치에서 하나씩 심어 보기로 했습니다.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되는 과정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지금은 <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시즌 6 글쓰기 중입니다.
중간에 합류할 수 있어요. 함께 하실래요?
https://blog.naver.com/dove7522/222413538266
제 책 <영화가 나를 위로하는 시간>은 어제부터 8월 25일까지 3주 동안 텀블벅에서 펀딩 프로젝트 진행 중이에요. 펀딩이 끝나고 후원하신 분들께 배송을 마치고 나면 9월 중순에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도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펀딩에 참여하신 분들께만 드리는 특별 선물과 혜택이 있어요^-^
둘러보시고 누군가에게 지지와 격려, 위로의 마음을 진심을 담아 전하고 싶다면 후원해 주세요.
<영화가 나를 위로하는 시간> 책만 후원하실 수도 있고, 작년에 펀딩 성공했던 <윤지원 코치의 영화 talk 마음 talk talk> 카드, 북 토크 참석권, 1:1 시네마 코칭권도 함께 후원하실 수 있어요.
아래 링크를 따라가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