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나, 다니엘 블레이크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나는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_다니엘 블레이크
Q. 내가 원하는 인간적 존중은 무엇인가?
A. 있는 그대로 존재로 바라보는 것을 원한다. 역지사지의 자세를 원한다. 원칙을 지키되 마음을 바라보는 시선을 원한다. 시스템이 만들어진 본래 목적을 떠올리며 일하기를 바란다. 자신과 상대방이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원한다. 평가가 아닌 연민과 환대를 원한다. 내가 바라는 인간적 존중이다.
질문의 의도는 타인이 나에게 어떻게 행하기를 바라는 가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질문을 한참 들여다보고 한 문장을 쓰며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타인의 시선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은 '내가 타인을 바라볼 때 나 자신에게 원하는'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질문에 한참 동안 답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 뿐이라는 마음의 소리 때문이다. 내가 원한다고 상대방의 태도가 달라질까, 라는 의문이 떠오르니 속도가 나질 않는다.
질문은 나에 대한 많은 정보를 준다. 질문에 대한 답과 답이 떠오르는 속도로, 그리고 질문을 대하는 나의 감정으로. 질문을 보자마자 답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분명 어려운 질문이 아닌데 막막할 때 내 마음은 침묵으로 포장한 복잡한 답을 이미 했다.
최근 칸트를 공부했기 때문일까? 실천 이성 비판에 나오는 의무로서의 도덕을 생각한다. 도덕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여야 하며 나뿐 아니라 누구나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받기를 원하는'과 동시에 '내가 하기를 바라는'을 생각하니 내가 원하는 것을 떠올리는 데 검열이 들어온다. 물론 내가 받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행하는 것을 칸트는 틀렸다고 말하지만 말이다. 받고 싶은 것과 대하고 싶은 것의 차이가 있는지 매의 눈으로 쏘아보는 기분이다. 생각의 샘 위로 드리워진 나뭇가지에 딱 앉아서 아주 날카로운 눈빛으로 생각의 흐름을 확인한다.
덕분에 나는 내가 받고 싶은 존중을 무리해서 요구할 수 없다. 내가 바라는 만큼 나도 타인에게 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향해서는, 그렇게까지, 라는 마음이 드는 것을 나에게는 해달라고 말할 수 없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내가 원하는 인간적 존중은 딱 한 가지로 수렴한다. 인간관계의 황금률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구나, 깨닫는다.
'내가 받기를 바라는 대로 상대에게 행하라'
단, 상대방이 원한다면.
2020. 8. 9 일 D-83
<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Q. 내가 원하는 인간적 존중은 무엇인가요?
A. 영화를 보며 다니엘이 느꼈던 모멸감이 온전히 전해졌다. 앞에 있는 담당관이 기계가 아닐까 싶었다. 기계여도 상관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메뉴얼대로 읽고 질문하니까.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이 떠오른다. 상자 안에 있게 되면 상대방을 나와 같은 존재가 아닌 차트 속 숫자나 분류용 서류같은 대상으로 본다. 나와 상대 사이에 건널 수 없는 두꺼운 벽이 생긴다.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일도 없다. “자기야 어딜 보고 있어? 먼 우주를 보는 것 같아.” 남편과 대화할 때 가끔 내가 하는 말이다. 남편이 내가 하는 말을 이미지화 하거나 좀 더 깊이 생각할 때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는 있지만 초점이 멀어진다. 마치 저 멀리 우주를 보는 것 처럼. 그러면 이 공간에서 함께 있는게 아니라 따로 있다고 느껴진다. 당연히 영혼의 만남도 느낄 수 없다. 친밀한 관계에서라면 나는 적어도 대화하는 순간만큼은 영혼의 만남이기를 바란다. 몸의 방향과 시선과 마음이 온전히 나에게 향하기를 원한다. 친밀하지 않은 관계라면 자신과 같은 한 생명, 존재로 바라보는 눈빛이면 좋겠다. 그리고 요청하기 전에는 존대말을 사용하기를. 최소한의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상식이 아닐 때 갈등이 생기더라. 다 됐고, 그냥,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한 존재라는 것만 잊지 말기를. 내가 원하는 인간적 존중은 그거면 되었다
<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하루 10분, 질문을 보고 떠오른 생각을 인스타그램에 매일 정리합니다. 그 글들을 씨앗 삼아 브런치에서 하나씩 심어 보기로 했습니다.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되는 과정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지금은 <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시즌 6 글쓰기 중입니다.
중간에 합류할 수 있어요. 함께 하실래요?
https://blog.naver.com/dove7522/222413538266
_다니엘”_ 다니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