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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Sep 02. 2021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의 이웃인가?

17. 나, 다니엘 블레이크

언제든 말씀만 하시면 뭐든 도울게요.

_다니엘의 직장 후배


우리가 힘들 때 우리를 도와주셨죠?

저도 아저씨가 힘들 때 아저씨를 돕고 싶어요.

_데이지


Q.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의 이웃인가?

A. 막막한 기분이 든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이웃은 우리 집을 기준으로 옆집, 앞집, 뒷집 등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집만 가까운 게 아니라 마음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지금은 물리적 거리로서의 이웃 개념은 희미하다.


사전을 찾아보니 이웃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1. 나란히 또는 가까이 있어서 경계가 서로 붙어 있음. 2. 가까이 사는 집. 또는 그런 사람.


1번은 물리적 거리를 말하고 있다. 2번은 물리적 거리를 포함한 마음의 거리를 말한다. 여전히 막막하다. 이웃의 범위를 어느 정도 선으로 잡아야 할까?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웃을 떠올리면 서로 음식을 나누고 자주 왕래하며 만났는데 지금은 '코' 시국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많이 달라졌음을 피부로 느낀다. 시대의 변화, 어쩌면 나라는 사람의 특성. 사람을 좋아하지만 부대끼는 것은 피하는 나의 습성이 시간과 맞물려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허전한 마음과 외로움의 조각이 발견된다. 최근 몇 주 동안 이사할 집을 찾느라 마음이 분주했다. 하늘 아래 이렇게 많은 아파트와 주택이 있는데 막상 내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보니 세상을 향해 불만이 많아진다. 정신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느라 물질, 돈을 경시하고 산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지만 지금 당장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이웃과 집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는 걸까? 내 마음속 외로움과 공허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돈으로 사지 못하는 귀한 경험들이 나의 지나온 시간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많이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지난날 삶의 무게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균형에 대해 생각했어야 했구나, 깨닫는다.


나는 여전히 여행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인 나를 본다. 그러니 자유와 고독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마음을 둘러보고 나니 막막했던 마음이 조금 편안하다. 터를 잡고 뿌리내린 사람도 여행하는 마음의 사람도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사랑하는 중인 것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묻는다. 지금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여행자에게 이웃은 지금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이들이다. 시간 속에서 우리는 계속 변한다. 1년 전에 이 질문에 답한 것과 지금의 답은 분명 다르다. 나도 변하고 나와 만나는 이들도 변한다. 잡을 수 없는 흐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렇게 스치는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시간이 흘러 소원해 지거나 예전 같지 않은 관계를 발견하기도 한다. 지금, 여기에서 진하게 만나되 흘러가 버린 관계에 연연하지 않기로 선택한다.


지금 나의 이웃은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다. 인터넷 세상을 다니다 잠시 안착한 곳이 여기일지라도.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지금  순간과 당신의 지금이 만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찰나의 만남이 이웃이 될지 그대로 흐를지 궁금하다.


2020. 8. 8 토  D-84

<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Q.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요? 그리고 나는 누구의 이웃인가요?


A.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 다니엘은 무뚝뚝한 편이고 버럭도 잘하는 남자 사람이다. 그의 심장에 이상이 생겨 오래 다니던 직장을 잠시 쉬고 있다. 안부차 직장에 잠시 방문하자 후배가 걱정 어린 눈으로 “언제든 말씀만 하시면 뭐든 도울 게요.”라고 거듭 말한다. 다니엘의 평소 행동이 어떠했을지 짐작을 해본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여러 감정이 올라와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분노, 슬픔, 죄책감 등. 다니엘은 수중에 가진 것이 많이 없을 때조차 그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돕는다. 케이티에게 다니엘은 첫 이웃이었다.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문득 게임이 생각난다.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라는. 게임에서의 이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성별, 안경 유무, 옷의 색깔 등.

 

나에게 이웃은 아마도 내가 최근 일 년 이내에 일 외에 대면 혹은 비대면으로 만난 사람들 일 듯. 나에게 먼저 연락하는 사람들이 나의 이웃이지 않을까. 그들에게 고맙다. 나는 성실하지 않은 이웃일 텐데. 그리고 ‘나는 누구의 이웃입니까?’ 이 질문은 사실 막막하다. 답 하기가 싫을 정도로. 나에게는 이웃인데 그들에게도 내가 이웃일까 싶다. 그리고 이 마음은 위축되고 불안한 마음으로 연결된다. 어쩌면 나의 오랜 트라우마와 관련 있을지도. 거부당하는 기분이 싫어서 내가 먼저 거부하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윤세리, 영화 <굿 윌 헌팅>의 윌. 그들의 공통점과도 연결된다. 상처 받은 어린 마음이 내 마음 깊숙한 곳 한편에 자리한다. 어쩌면 나의 동물적인 스캔 능력은 이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발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처 받기 싫으니 떠날 사람은 미리미리 떠나라는 그런 마음. 하지만 나는 사실 속 정이 많은 사람이고 그렇게 방어막을 치는 중에도 나는 이미 상처가 생긴다. 억지로 못 본 척할 뿐. 그러니 나는 내가 건강한 순간에는 힘껏 사랑하려고 한다. 미리 겁먹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다니엘처럼. 누군가의 이웃이 되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하루 10분, 질문을 보고 떠오른 생각을 인스타그램에 매일 정리합니다. 그 글들을 씨앗 삼아 브런치에서 하나씩 심어 보기로 했습니다.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되는 과정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지금은 <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시즌 6  글쓰기 중입니다.

중간에 합류할 수 있어요. 함께 하실래요?

https://blog.naver.com/dove7522/222413538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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