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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Apr 27. 2023

할머니 소리가 불러온 인생 변화

30대 끝자락, 할머니 소리를 듣다

때는 바야흐로....

한 4~5년 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퇴근을 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한 무리의 학생들이 내 쪽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이 얼핏 보였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휴대폰에 집중했다.


얼마 후,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하고, 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내가 움직인 순간, 건너편에 있던 학생 중 몇 명이 마침 파란불로 바뀐 횡단보도를 미친 듯이 뛰어서 건너오는 것이 아닌가. 학생들은 내가 있는 방향으로 말 그대로 "후다닥" 달려왔다.


학생들의 행동이 조금 이상해서, 나는 그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는데, 나랑 눈이 마주친 학생이 나를 보더니 (꽤 오랫동안 내 삶에 영향을 미친)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아, 뭐야, 할머니였잖아."


처음에는 나한테 한 말인 줄 몰랐다. 아무리 어린 학생들이라지만, 그래도 할머니라니, 너무 심하잖아.

그런데 정확히 내 눈을 보고 말을 다. (썩을...)


당시는 내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런 소리까지 들으니, 내 자존감은 바닥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암흑 속으로 곤두박질을 쳤다.


고개를 들고 거리를 다니지 못할 정도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고 수군거린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나는 내 월급의 대부분을 외모를 가꾸는데 쓰기 시작했다. 피부과도 가고, 필라테스도 시작하고, 피부에 좋다는 영양제도 챙겨 먹고, 입소문을 탄 화장품이 있으면 집착적으로 사 모았다.


몇 년을 관리하니 확실히 달라지는 게 보였다. 그런데 아무리 달라져도 내가 예뻐 보이지가 않았다. 그냥 나한테 붙어 있는 모든 것들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상시처럼 거울을 빤히 쳐다보며 불평불만을 한가득 쏟아내고 있는데, 뜬금없이 어떤 사실 하나가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정신 차리라는 무언가의 계시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외모뿐만 아니라, 나란 사람 자체를 싫어하고 있구나.


"네가 하는 일이 다 그 모양이지.", "너는 이것도 제대로 못해서.", "진짜 창피해 죽겠어."


일 같이 자책하며 했던 말들. 

나를 이렇게나 싫어하는데, 외모라고 예뻐 보였을까?


그때, 할머니 소리를 들었다.

그때, 자신을 사랑하라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만약, "할머니였잖아."라는 소리를 지금 들었다면,

 "어머, 멀리 서는 내가 누나보였나 봐요. 호호호, 기분 좋은데." 라며, 웃어넘겼을 것이다.


내 눈에는 지금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예... 쁘니까. 


여전히 나는 외모 관리에 신경을 쓴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거울을 보면서, "오늘 참 예쁘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는 사실 정도? 나 자신한테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나는 그 어려운 걸 오늘도 해냈다.


"너 오늘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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