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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May 01. 2023

쓸데없는 분노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

하지만, 겪지 않아도 되는 일

좁은 산책길, 

삼삼오오, 몇몇 사람들이 수다를 떨며 지나간다. 

평상시라면 그들의 대화를 듣고 흘려버렸을 텐데, 오늘따라 귀에 박혀서 떠나질 않았다. 그들은 직장생활의 부조리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려니,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커서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렸다. 휴일이 끝난 후에 직장에서 해야 할 일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직장에서의 일은 웬만하면 잊어버리고 퇴근하는 타입인데, 황금 같은 휴일, 그것도 산책길에 직장일을 떠올리게 한 그들한테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내 불쾌함은 직장에서 나를 몹시 불편하게 만드는 상사에게로 향했다. 자주 만나는 분은 아니었는데, 가끔 볼 때마다 앞뒤 없는 짜증을 내는 타입이었기에 웬만하면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조만간 만날 일이 생겨서, 벌써부터 불쾌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저번처럼 다른 사람한테 화가 난 걸 나한테 화풀이하거나 하지 않겠지? 나 그 짜증 받아내기 싫은데."


나는 툴툴거리며, 화가 가득 찬 상태로 산책을 계속했다. 


산책길 중간쯤, 나는 내 귀를 따갑게 했던 일행들과 다른 방향으로 길을 틀었다. 더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내뱉은 불평불만은 계속해서 내 귓가를 맴돌았고, 나는 내가 겪게 될지도 모를 상사와의 트러블을 상상하며, 점점 걸음을 빨리했다.


하늘과 나무를 눈에 담고, 새소리를 들으며 한적하게 걷던 내 산책길은 분노와 짜증, 화가 가득 찬 불쾌의 길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그렇게 만든 모든 사람을 향해 분노를 쏟아냈다. 


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숨이 가빠왔다.


그러던 중, 계단을 내려가다가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발을 헛디뎌서 넘어질 뻔한 것이다. 다행히 바로 자세를 잡고 버텼지만,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경험을 했다. 아래로 길게 이어진 계단을 보며 나는 식겁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아, 죽을 뻔했잖아."


만약, 바로 자세를 잡지 않았다면? 나는 이 계단을 굴러 떨어졌겠지? 그럼 팔다리 하나 부러졌을 수도 있고, 더 심하면 죽을 수도 있었잖아?!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면서 최악의 상황을 생각했고, 굴러 떨어지지 않음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런데 그 이후, 놀랍게도 내 분노는 완벽하게 사라져 있었다.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내가 산책길에 큰 소리를 수다를 떠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는 사실도,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상사에 대한 분노도, 갑자기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나, 왜 화가 났던 거지?"


분노가 사라지자, 내가 상사와의 불편한 몇 번의 만남으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다음에 만날 때는 안 그럴 수도 있는데, 지레짐작으로 그 상사를 매 순간 짜증만 내는 사람으로 판단하고,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상상하며 쓸데없는 분노에 휩싸였던 것이다. 


만약, 내가 계단에서 넘어질 뻔하지 않았으면, 나는 산책이 끝날 때까지 불편한 일을 생각나게 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상사를 향한 분노를 드러냈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 후, 나는 나를 강하게 휩쓸고 지나갔던 분노가 먼지처럼 하찮게 보이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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