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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POST Oct 01. 2018

아빠와 함께 읽는 그림책 마음콩 쑥쑥-소통- 아기 돼지



소통? 기준의 차이


딸아 오늘도 마음콩 쑥쑥을 읽어 보자. 

어느 날 다람쥐, 원숭이, 곰이 아기 돼지 삼 형제에게 세 개의 침대 선물을 준비한다. 엄마 돼지는 침대 사이즈를 알려 준다. 하나의 메시지이지만, 다람쥐, 원숭이, 곰이 받아들이는 메시지의 해석은 전혀 다르다. 아기 돼지 삼 형제의 침대가 각각 다른 모양으로 제작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오늘 그림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소통'이었다. 침대 사이즈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선물을 만들어 주려는 동물들이 각기 다른 불편한 침대를 제작한다. 자세히 보면, 엄마 돼지의 메시지가 불분명했다. 크기를 '양팔로 안으면 쏙... '이라고 표현한다. 양팔이라는 기준이 모호하고 팔의 길이는 동물마다 다르다. 

이런 메시지는 상대방이 알아듣기 불분명한 메시지이다. 정확하게 수치화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을 한다.  그렇다고 모든 메시지를 수치화해야 할까? 그럴 수는 없다. 

일상에서 오가는 많은 대화들이 불분명한 기준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같은 메시지라도 '이해'하는 내용이 서로 다르다. 왜 그럴까? 결국 메시지를 읽는 자신만의 기준이 달라서가 아닐까... 

사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며 생각한다. 



'가장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은 바로 내(아빠)가 아닐까...'




내가 아이의 기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가 원하는 메시지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양한 육아서를 읽고 다양한 전문가의 조언을 듣더라도, 이미 내 몸에 체화된 나만의 기준은 아이의 기분과 부딪치기 마련이다. 결국 누군가와의 소통을 아이에게 가르치기 전에 나부터 아이와 소통해야 한다. 




아기 돼지 침대를 만들다.


나이가 많다고 아이를 안다고 착각한다. 정작 어른은 자신의 어릴 적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마치 어른이 되어 아이의 기준을 이해하는 척한다. 내가 아이에게 만들어 준 침대는 과연 아이를 위한 침대일까? 

양육에서 내가 지치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의 기준을 갖고 아이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의 행동에 내가 지쳐가는 것이다. 조금만 더 아이의 기준에 맞춰주면 되는데, 어느 순간 짜증을 내는 나를 발견한다.  나의 '짜증'은 아이에게 투영된다. 그 투영된 '짜증'은 아이에게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다.  문제는 그 기준의 생성이다.  아이의 기준이 아이에게 잘못된 짜증 섞인 기준이 될까 봐 걱정된다. 나와 아이와의 소통은 점점 어려워진다. 


기준은 감정보다 중요하다.



아이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변할지만, 아이에게 세워진 기준은 아이 성장의 가치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짜증 어린 기준이 아닌 아이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자신만의 기준의 틀을 세워져야 한다. 그 세움은 소통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아이의 욕구를 파악하고 아이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아이의 자존감을 세울 수 있는 지름길이다. 



다름의 인정 -존중-



결국 나의 반응은 아이를 향한 존중이라는 다른 언어로 정의된다. 내가 아이의 기준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아이는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존중받는 아이가 성장하여 남을 존중할 수 있고, 그 존중이라는 내적 가치가 존엄성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즉 자존감(존엄성)이란 결국 아이의 기준에 대한 부모의 반응에서부터 출발한다. 

과연 나는 아이의 기준에 맞추어 세상을 보고, 사물을 볼까? 아이가 바라보는 '무게'와 '넓이' 그리고 '길이'는 내가 보는 시선의 방향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 기준을 잘 읽지 못하는 나는 아이의 투정과 짜증을 단순히 '네가 잘못하는 거야', '혼날래'로 반응한다. 그건 아이의 기준에 대한 이해가 아닌, 내 기준에 대한 짜증일 뿐이다. 

소통이 되지 않는 것. 그것은 세상을 보는 기준의 차이 때문인 것을 이해해야 한다. 결국 문제는 기준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준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충분히 그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소통의 시작인 것이다. 

만약 아이가 미성숙하여 그 기준의 틀이 매우 낮은 단계라고 한다면, 난 조금 더 아이를 기다려 주며 한 단계 높은 기준을 보여주기만 하면 그만인 것을... 왜 짜증을 내는지... 미안하다. 딸아... 



소통의 조건 - 경청과 기다림-


아이에게 맞는 침대를 만들어 줘야겠다. 아이는 지금 자신에게 맞는 침대를 가질 때 행복할 수 있다. 부모가 맞지 않은 침대를 주면서, 아이에게 이 침대에서 잠을 자라고 강요한다면, 아이는 현재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할 것이다.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침대는 지금 아이에게 딱 맞는 침대다. 

내 기준에서 아이의 치수를 재단하지 않고, 아이의 입장에서 치수를 재단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필요한 소통이다. 그래서 아이의 기준을 읽을 수 있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아직 의사소통이 미숙한 아이에게 기다림은 최고의 의사소통이 된다. 그 기다림 속에서 아이는 아빠의 메시지를 이해할 것이다. 

마음콩 쑥쑥을 읽으며 오히려 내 마음이 자라고 있는 것 같다. 뭐지... 어쩌면 아이와 나는 함께 성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콩 쑥쑥 '아기 돼지 삼 형제의 침대' - 소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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