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10년 안식을 위하여,

by MSG윤결



가끔은 가까운 사람들이 세상 가장 어색하거나, 멀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은가?


사랑한다는 말로 가족이라는 말로 서로를 묶어두고, 언제부터 그렇게 친밀한 가족이었다고

나를 걱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친밀함을 내비치고,

그 깊은 밀도만큼 서로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면 마음 한구석의 통증이 온다.


사랑하지만 버거운 이름, 가족.


그 관계의 촘촘한 그물망에서 잠시 벗어나 나만의 숨구멍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서 나를 소모하며 걷는 걸음이 아니라,

내 발바닥으로 직접 흙을 밟으며 자유롭게 걷는 삶.

그것이 내가 모든 익숙함을 뒤로하고 시골행을 결심한 가장 솔직하고도 유일한 이유,

사람들의 배신도 싫고, 사람들이 나에게 원하는 바람도 진절머리 나고,

나는 나로 내 인생의 나 하나만 생각하며 살고 싶었다. 어쩌면 그게 가장 큰 이유겠지.


나의 발걸음은 쉬는 날마다 쉴 틈만 나면 늘 강원도로 향했다.

남들은 멀다고 손사래를 치는 그 길을 나는 자석에 이끌리듯 달려갔다.


심지어 한 달에 한 번 마음을 다스리러 가는 절조차 강원도 고성의 건봉사다.

민통선 인근, 그 고요하고도 엄숙한 공기 속에 머물다 보면 비로소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늘 문제는 돌아오는 길이었다. 건봉사를 뒤로하고, 푸른 동해를 등진 채 다시 회색빛 도시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매번 '집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한다.


잠깐의 휴식으로 채워지지 않는 이 통증은 결국 그곳에서 살아야만 해소될 것임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내 마음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은 줄곧 그 깊고 푸른 동해였다.

서해의 잔잔한 갯벌이나 남해의 오밀조밀한 풍경도 나름의 매력이 있겠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거침없이 몰아치고 끝없이 깊은 동해의 파도였다.

속을 다 드러낼 듯 투명하면서도 끝을 알 수 없는 그 물결 앞에 서면,

내 안의 옹졸한 고민들도 거품처럼 씻겨 내려갈 것만 같았다.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진짜 내가 된 것 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딸, 혹은 누군가의 무엇이라는 명함 대신, 그저 바닷가 어느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는 사람,

혹은 서툰 손길로 흙을 만지는 초보 귀촌인으로 이름 없이 살아가고 싶다.

가끔 봐야 그리운 사람들처럼, 사람들과의 거리만큼이나 나 자신과의 거리를 좁혀가는 시간이 내게는 무엇보다 절실하다.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삶이 아닌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그 시간들,



누군가는 걱정 섞인 목소리로 묻는다.

도시의 편리함이 그리워지면 어떡하느냐고, 그 외로움을 어떻게 견디겠느냐고.

그러면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그리워지면 그때 다시 돌아오면 되지."



나는 내 인생의 다음 10년을 이곳에 걸어보기로 결정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시간 동안 흙을 밟고 자연의 속도에 맞춰 살다 보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설령 10년 뒤에 내가 다시 도시의 불빛을 그리워하게 된다 해도 상관없다.


적어도 그 10년만큼은 온전히 내가 주인인 시간이었을 테니 말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도피가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한 가장 정직한 투자이자 선물이다.


시골에서의 생활은 막연한 낭만으로만 채우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장 익숙하게 해 왔던 카페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틈틈이 귀농 프로그램을 통해 낯선 농사 기술을 배워나갈 계획이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커피 한 잔을 내리며 낯선 이웃들과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고,

오후에는 흙을 만지며 생명의 정직함을 배우는 삶. 무엇이든 내 손으로 직접 해보며 얻는 성취감,

그것이 지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가장 큰 동력이 될 거라 믿는다.

도시에서는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지만,

이곳에선 내 몸을 움직여야만 비로소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수고로움조차 달콤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나는 복잡한 도시의 소음 대신, 창가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살아가려 한다.

거창한 성공이나 화려한 미래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 물기 머금은 흙냄새를 맡고,

저녁에는 수평선 너머로 저무는 붉은 해를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여유.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되어 오롯이 내 호흡을 느끼며 걷는 그 시간들이야말로 내가 찾던 진짜 자유다.

내 인생의 두 번째 막은 그렇게 동해의 푸른 바다 곁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시작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언제 어디로 갈 건데?라고 묻는다,

귀촌을 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골로 이사를 가려면 무얼 해야 하는지

하나씩 찾아보고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그만큼 나의 인생에 시골라이프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가 되었다.

사람들에게는 걱정과 우려 일뿐이고, 헛된 로망을 꿈꾼다며 손가락질하지만,

나는 안다. 결국엔 내가 힘들어봐야 알고, 그 힘듦을 견디다 보면 내가 된다는 걸 말이다.



고성 건봉사의 고요한 종소리처럼, 내 삶도 앞으로 조용하지만 강한 평온한 울림을 찾아갈 것이다.



-윤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