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만 21년을 살았던 아파트를 떠나 옆동네로 이사를 간다.
2002년 10월 6개월 된 큰 아이를 안고 이곳으로 왔는데 그 녀석이 군대에 가고 이곳에서 둘째가 태어났다.
어제 오후에 인테리어 마무리가 된 이사 갈 곳을 둘째에게 보여주려 가는 길에 아이가 묻는다.
"이사를 왜 가는 거야?"
"이사 안 가면 평생 여기서 살 거 같아서"
연휴가 끼어 있어 한 달이나 걸려 단장된 아파트를 보고도 시큰둥한 둘째를 보니 이사를 앞두고 아리송했던 내 마음도 편치가 않았다.
인생의 반 이상을 살아온 나에게도 지금 이곳은 가장 오래 거 주한곳이다.
대학과 직장생활로 오래 생활한 곳이 있는데 그 시간을 어느새 이곳에서의 시간이 훌쩍 넘었다.
아이들이 걸음마를 떼고 단지 내 유치원을 다니고 아파트에서 바로 보이는 초등학교를 다니고 걸어서 10분 거리의 중학교까지 연이어 다니고 졸업하였다.
이곳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이 실직을 해서 앞이 캄캄하기도 했었지만 성실한 남편 덕분에 특별히 힘들지 않은 시간을 보내왔고 그 시간만큼 아이들은 자라고 우리 부부는 주름이 생겼다.
이사를 앞두고 며칠 전부터 더욱 싱숭생숭하다.
구축이지만 깨끗이 단장된 곳으로 가니 좋겠다는 덕담을 들을 때마다
'가서 후회하는 거 아냐?' 하는 불안감이 있다.
집을 파는 것도 사는 것도 공사를 하는 것도 모두 나한테 일임하는 남편덕에 이 이사는 오롯이 나의 결정이다.
내 결정으로 아이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벗어난다. 더군다나 군대에 간 큰 아이는 정든 곳에 눈인사도 못하고 말이다.
아이들에게는 고향을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주 걷는 길을 지날 때면 몇 주동안
'언제 이 길을 다시 걷게 될 일이 있을까?'
하는 감상에 빠졌다
같은 구에서 동만 바뀌는 거지만 아마 특별한 일이 아니면 올일이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졸업한 후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유치원 쪽으로 갈 일이 없는 것처럼 사람의 이동반경은 생각보다 넓지 않다.
지하철이 7호선에서 6호선으로 바뀌고 아직 고등학생인 둘째는 학교와 학원 오가기가 조금 불편해진다.
아이들 일기장 상자를 정리하다 보니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자주 보던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이사 가는 걸 말해야 하나 싶은데 또 딱히 연락할 사람도 없다.
아이들이 크면서 자연스레 볼일도 없어지다 보니 안 본 지도 꽤 되어 연락하는 게 오지랖으로 보일까 봐 단념했다.
21년을 살았는데 연락할 동네친구 한 명 없다는 게 나의 싱숭생숭한 마음에 그늘을 더 해준다.
금세 지나가버린 21년처럼 새로운 곳에서 나의 시간은 몇 년이 될지 궁금하다.
버려야 할 물건이 끝도 없다.
그러나 버려야 할 기억은 없는 21년이다.
잘 살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