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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제이 Oct 19. 2024

목적지가 선택되었습니다(12)

#12. 동그란 자갈이 밟힌다.

         

출처 핀터레스트

외로움과 불편함을 동반한 괴로운 마음을 누르며 ‘함께’라는 안정감을 위해 견디며 걸어온 지난 시간을 뒤로 하고, 조금은 불편한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하고 우리 부부는 일 년간 떨어져 지낸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 년간 아들 둘을 혼자 키웠습니다. 안정감을 포기할 만큼 큰 용기가 필요했던 제게 스스로 내디딘 길은 맨발로 걷는 자갈길처럼 느껴졌지요. 알면서도 선택한, 외롭고 불편한 고통스러움이 가득한 자갈길을 혼자 걷자고 결정했습니다. 생각보다 아팠고, 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결심한 이후부터 내가 걷는 이 순간, 이 길이 정말 아프다는 걸 매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지요. 학원 수업 후, 자리 정리도 하지 못하고 아이들 밥을 챙기러 총알같이 퇴근하는 제가 너무 낯설었습니다. 수업 후 채점과 상담, 장부 정리, 무수히 정리되지 않은 일들까지. 수업을 병행하는 원장이었기에 엄마의 자리를 병행하는 것이 생각보다 벅찼습니다. 하지만 정말 혼자였다면 하지 못했을 일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이해와 도움으로 점점 혼자인 것을 잘 이겨내고 있는 저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명절, 친정에 갔을 때 부모님께 제가 혼자 지내는 상황을 알리고 나서도 같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사실상 통보라 평소라면 서운하다 하셨을 부모님인데, 제가 그동안 얼마나 속을 끓였을지 충분히 짐작하셨기 때문일까요. 그저 제가 잘 지내면 되었다는 말씀뿐이었습니다. 사실, 그 말은 온전히 저를 이해한다는 말이었고, 처음으로 부모님이 온전한 제 편이 되어주신 날이기도 했습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시다시피 저와 부모님의 사이는 고등학교 이후로 줄곧 장마 기간 같았지요. 그날의 대화는 마치 줄곧 우중충하고 눅눅한 한여름의 습했던 날씨가 뽀송하게 쨍~!하고 해가 뜬 것 같았습니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제가 혼자인 것을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조금씩 채우려 노력하는 사이, 그 모습을 보던 저의 몇몇 지인들도 응원의 말과 함께 많은 공감과 함께 매일 많은 위로를 받고 있었고, 힘을 냈습니다. 최근에는 걱정의 말이나 힘내라는 말보다 “걱정 안 해도 되겠네!” “밥 사라.” “축하한다.”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이상합니다. 저는 분명 혼자가 되었는데 말이죠. 잠들기 전 이런 저에게 꼭 “내가 그동안 잘 살았나보다. 그러니 오늘도 고마운 사람들을 잊지 말자.”라고 맹세합니다. 만약 이렇게 힘든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저에게 도움을 주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을까요? 제 주변의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저의 힘든 상황 덕북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다음에 불행이 또다시 찾아오더라도 (지인들이) 지금 불어 넣어 준 이 용기와 격려, 응원의 힘으로 끝까지 힘듦과 맞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처 핀터레스트


그만큼이나 마음이 힘들던 때, 엄마가 제 곁에 없던 사춘시 시절을 떠올려봅니다. 그야말로 어금니 꽉 깨물고 버텨낸 날들이었습니다. 그 시절엔 누구도 –설령 핏줄이 섞인 사람들마저도- 나에게 힘이 되어주거나 곁에 있어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보고 지냈던 어른들은 -사는 게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던- 열일곱의 저에게, 너도 이제 다 컸으니 혼자 걸어보라며 재촉하기만 할 뿐 누구도 어깨를 내어주는 이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불안했던 걸까요? 열일곱의 저는 친구들과 잘 소통하지 못해 이상한 아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외톨이로 지냈고, 심한 경우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느 사람에게도 이해와 인정, 감사하는 마음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생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확연히 다르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시절과 비슷한 부피의 힘든 상황을 맞고나니, 그 무게감이 현저히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그 이유는 지인들과 가볍게 고민을 말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제가 되어서 일겁니다. 누군가가 나를 믿고 응원해준다는 것은 내가 먼저 믿음을 내보여야 느낄수 있다는 것을 그 일년의 시간동안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계기는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과 함께 몰랐던 소중한 사람들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소중한 이들의 발견은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래서 설령 넘어져서 혼자서는 못 일어나는 상황이 되더라도, 그런 나를 누군가 발견해 줄 것이라는 믿음의 빛이 항상 함께합니다. 당장은 일어서지 못하더라도 곁에서 기운을 북돋아 주고 응원해주며 격려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또한 일어설 때 손 잡아 줄 누군가 기다려준다면 언제든 일어설 준비가 될 때 편히 일어날 수 있겠지요.


충분히 쉬고 난 후 다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옆에 있어 주는 사람도, 조심히 걸어보자고 다독여 주는 사람도 넘어졌던 사람에게는 모두 고마운 사람입니다. 사실 저는 조금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잠시 앉아서 쉬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곧 저도 혼자서 당당히 걸을 수 있겠지요. 그때가 되면 저도 주변을 둘러보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혹여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가 넘어진다면, 제가 그대 곁에서 기다려주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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