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행복 고속도로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행복을 만나게 됩니다. 또한 행복의 얼굴 역시 여러 가지 표정을 짓지요. 나의 행복은 현재의 고마움과 사랑스러움에 만족스러워하는 미소를 지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의 불행을 떠나보내며 쓴 미소를 지어주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의 행복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불행과 행복’은 부정적 감정과 긍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상투적인 단어입니다. 너무나 흔한 두 단어는 우리의 사이사이에 자리 잡고 있지요. 그리고 저에게도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었답니다. 차마 마주 보기 힘들어 부정(否定)하지 못한 부정(不正)한 감정들은 어느새 저의 마음 온도를 얼게 하고, 결국 뾰족한 고드름이 되어버렸습니다. 군데군데 도드라진 고드름은 나를 찌르고, 남을 찌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저의 오랜 불행한 감정들을 떠나보냈습니다. 저를 위한 주변의 따뜻한 질책들은 제 안에 있던 고드름을 부러뜨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부러지는 듯 아프기도 했습니다. 그런 관심들에 결국 저의 고드름은 녹아내려 눈물이 되어 뚝뚝 떨어지는 날도 있었고요. 이런 날이 반복되며 어느새 고드름 안에서 쓴웃음 지으며 얼굴을 내미는 행복의 작은 얼굴을 마주하던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더 나은 나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해 전하는 조언을 잘 받아들이는 융통성이 필요합니다. 덧붙여 부정적 감정들에 의해 자란, 어느새 익숙해진 기다림이라는 줄을 잘라버리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 없는 사실이지요. 물론 그 기다림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이라면 주변 사람들도 결과를 기다리며 응원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타의 또는 차선으로 선택한 기다림이라면, 저에게 배신감을 느끼거나 좋은 결과물을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다리고 참아왔던 얼굴이 결국 나의 본모습이 아니었다면, 어떤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완전히 행복한 미소가 아닌 고드름 속의 뾰족하고 차가운 실소를 내뱉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저는 주변의 사람들을 만나기 이전에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의 제목에서 많은 위안을 얻었습니다. 물론 책의 내용도 좋았지만, 가장 크게 와 닿은 것은 그 무엇보다 제목이었습니다. 그 위안 덕분에 그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게 되어 미움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생각들을 바라볼 용기조차 없던 저를 어느 순간 주변의 따가운 조언들이 사실은 따뜻한 위안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미움받는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견딜 수 없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다리고 참아야만 하는 시간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지난해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 저는 미움을 마주 볼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미움받을 용기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미움의 감정을, 아니 모든 부정의 감정을 인정하고 마주하는 계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고, 아니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며 부정적인 감정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방법도 있겠지요. 분명한 것은, 그런 과정 뒤에는 확실히 부정적인 감정들을 밟고 올라서는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 (또는 감정)들은 누군가에게 줄 때도, 받을 때도 금세 나를 지치게 합니다. 마치 행복한 마음 한가운데에 스러진 썩은 나무와도 같습니다. 그 나무는 어쩌면 누군가에 의해 쓰러졌거나 아니면 나 스스로 쓰러트렸을지도 모르는 불행 나무이겠지요. 이렇게 행복의 길을 가로막은 불행 나무들은 슬픔과 불행, 아쉬움, 두려움 등의 부정적(否定的) 감정을 머금고 불행의 그림자를 드리우거나, 때로는 쓰러진 모습으로 행복의 길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이러한 부정 나무의 크기가 작을 때는 무시하고 피해 갈 수 있지만, 나무의 크기가 큰 나머지 길을 피해 갈 수 없을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럴 때는 스스로 부정 나무를 치우는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야만 행복이라는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을 테니까요. 어쩌면 나무를 치워내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들을 걷어내는 시간 또한 나의 내면의 힘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라 여긴다면 그리 괴롭지만은 않겠지요.
반대로 행복하다는 감정은 어쩌면 부정적 감정 뒤에 감춰진 보상은 아닐까요? 책의 제목에 ‘미움’과 나란히 놓인 ‘용기’를 내야만 얻을 수 있는 보상말이지요. 그 이유는 슬픔 뒤엔 기쁨이, 불행 너머 행복이, 때로는 아쉬움을 지나 완성이 찾아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는 슬픔과 불행, 아쉬움으로 후회와 원망, 자책하느라 그 후에 행복을 마주친 그 순간이 나의 것인 줄도 모른 채 지나치는 건 아닐는지 되짚어봅니다. 그때를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행운과 행복을 모두 만날 수 있겠지요.
저에게 행복은 항상 불행 다음으로 찾아왔습니다. 이전의 저는 불행의 마음에 담가진 채 살아왔기에 근처에 맴돌며 따라다니던 행복과 행운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잠시라도 찾아온 행복을 알아보고 그 손을 잡았더라면 그 찰나의 순간을 오랜 기간 차가웠던 불행한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행복감이 얼마나 오래 머물렀을지는 모를 일이지요.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는 언제 찾을지 모르지만, 행복의 상징인 세잎클로버는 항상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아니, 애써 찾지 않더라도 보이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조금만 시선을 달리 본다면 불행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은 바로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행복은 갑자기 나타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만 하는 것이죠.
행복의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졌습니다. 행복한 시간은 나에게 아직 오지 않았다고 자책하고 포기하기 이전에, 내 주변 어딘가에 있을 행복의 손끝을 먼저 찾아 나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