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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제이 Oct 22. 2024

목적지가 선택되었습니다(15)

#15. 꿈의 가이드

         

초등학교 5학년. 처음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고모가 다니는 수영장에 한 번 따라갔다가 물속에 들어가자마자 그냥 물에 한 번에 쉽게 뜨는 저를 본 고모는 그날로 수강권을 끊어주었습니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 그다음엔 두 번. 수영을 배우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실력은 차츰 늘어났습니다. 그러던 중, 힘든 자유형을 지나 평형 배울 때쯤이었나, 코치님이 시작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저에게 자유형 종목 학교 대표로 추천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수영 대회에 나가게 되었고, 몇 회의 출전 결과, 몇 개의 기록과 금메달 은메달을 손에 쥐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단상에 올랐을 때, 기뻐해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어린 시절임에도, 가장 높은 단상에서 아무도 없음을 바라보며 세상의 허무함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기록과 수상의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오후 수업을 들으러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우는 날이 점차 쌓였습니다. 그나마 메달 소식에 기뻐해 주는 친구들이 있어 긴 시간 혼자 싸울 수 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에 수영부가 없어 3년을 새벽 6시에 일어나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코치진도 없이 혼자서 기록을 재가며 운동했습니다. 게다가 운동 후 등교와 학교를 마치면 학원 수업과 학교 숙제를 하면서도 학교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모두 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하면 혹 이해가 될는지요. 운동과 수업을 병행한 시간이 무색할 만큼 부모님의 지원은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심리적 지원 또한 없었기에 힘들던 때였습니다. 그저 바람은 오롯이 나의 힘으로 메달을 딸 거니 나를 보고 와서 박수 쳐 주는 한 사람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중 1 가을, 집중 코스를 밟아 체고 진학을 해보자는 체육 선생님의 말씀을 부모님께 전달하던 날, 부모님은 딱 잘라 “공부 잘하는 데 인문계 가야지.”라고 하던 날은 잊지 못할 장면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악착같이 잘해봐라. 이제라도 응원하고 지원해 줄게. 운동에 소질 있는지 몰랐다. 우리 딸 잘했네.” 이런 말을 들을 거라고 내심 기대했던 저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면 수영으로 성공하지 않았더라도 저는 무엇을 하고 살아도 자신감 하나는 우주 최고이지 않았을까요?     



수영을 그만두었다고 하니 무용선생님은 저를 따로 불러서 한국무용을 해보지 않겠느냐 하였습니다. 미술반 선생님도 입시 미술을 시작해 보라고 권하셨습니다. 음악 선생님은 가야금을 권하기도 하셨고요. 어쩌면 성적이 좋으니 잘하는 분야의 선택지가 펼쳐졌던 것은 아닐까요. 좋은 예고는 성적까지 보던 때였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그 시절 저는 미술 감각은 그림을 그렸던 아빨 닮아 타고난 것 같고, 도구를 잘 사용하는 편이라 악기를 추천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용은, 오랜 몇 년을 수영으로 다듬어졌던 체형이라, 모양이 예쁘게 나올 것을 예상하시고 추천했을 것으로 추측해 봅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은 공부가 제일 쉬울 거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물론,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것을 4년 뒤에 깨닫게 되지만요. 하하     



결국, 제가 예체능으로 나가지 않은 이유는 학업도 예체능도 제대로 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하지 않을 이유를 찾았던 걸지도 모릅니다. 이를테면 무용은 비용도 많이 들고 맛있는 음식도 자주 못 먹을 테니까, 가야금은 흔한 악기가 아니니 당연히 반대하실 거라는 걸 알았고요. 단 하나, 미술은 고등학교 진학까지 영향 끼칠 정도로 아빠가 싫어하셨기에 가장 타당한 이유로 포기한 꿈이네요. 물론 예체능을 포기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유는 레슨비의 부담과 함께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라는 생각이 제일 컸을 겁니다. 수영을 그만둔 시점이 학업 성적이 떨어지던 때라 고민이 되긴 했거든요. 예체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을 갖고 시작하더라도 좋은 성과가 나오기 어려운데 이런 것들로 고민하는 것 자체가 나의 길이 아니라고 결정하는 계기와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에야 말하건대, 저의 가능성은 혹 그때 열릴 수 있던 건 아닌지, 아주 잠깐이지만 후회를 담아 작은 한숨과 함께 옛 시절로 내보내 봅니다.     



앞서 말한 꿈과 재능이 많던 어린 시절을 보낸 저는 지금 제 아이들의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시지 않나요? 저의 큰아이는 진로를 체육(축구) 쪽으로 생각하고, 둘째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진로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나의 아이들이 어떤 길을 가더라도 엄마인 제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진로를 함께 고민하고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기회를 발로 잡을지 손으로 잡을지 미리 준비한다면 좀 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무엇을 잡든 그것은 아이의 몫이지만, 아이 미래의 길을 선택 가능하다면 뾰족한 자갈보다는 동그란 자갈로 만들어진 길이 선택되길 바랍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아이들에게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꼭 해야만 하는 것만큼은 가르치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아이들도 본인의 의무와 권리, 자유를 제대로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부모라는 존재는 아이들에게 나침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공부는 필수라고 모두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그저 단순한 책상 앞에서 하는 공부가 아닌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저 공부라는 게 수학이나 영어 등의 과목 공부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물론 그런 종류의 공부도 중요한 공부의 한 종류입니다. 하지만 그런 공부뿐만 아니라 내가 주어진 위치에서 전문가가 되고자 연구하는 것이 삶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진정한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에 있어 중요한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아이 엄마일 때는 아이 엄마로서, 회사에 다닌다면 회사원으로서, 학생이라면 학생으로서 주어진 책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내게 주어진 삶의 무언가를 겸손하게 묵묵히 해내는 것. 그것을 해낸다면 우리 아이들이 과목과 상관없이 지금보다 더 먼 훗날, 후회라는 한숨을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저와 아이들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공부, 꿈의 공부라는 가이드를 마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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