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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제이 Oct 18. 2024

목적지가 선택되었습니다(11)

#11 하굣길 문구점 앞 골목길

          

몇 년 전 ‘오징어 게임’이라는 유명 드라마에서는 여러 가지 추억의 놀이가 소개되어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줄다리기’ ‘고무줄놀이’ 등 어릴 때 친구들과 하던 여러 놀이는 우리의 소소한 즐거움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중 우리에게 가장 많은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달콤함의 끝에 적셔진 약간의 씁쓸한 맛으로 초등학생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간식인 ‘달고나’ 아닐까요?


지금에야 온라인 쇼핑몰만 검색해도 그 재료들을 마음껏 담아 구매할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집 앞 슈퍼마켓에서 작은 파우더를 사와 집에 있는 국자를 태워 가며 부풀어 오르는 갈색 풍선을 눌러 친구와 나눠 먹던 아날로그 시대였답니다.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하하


저도 달고나의 인기에 ‘집에서 달고나 만들어 먹기’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때가 아마 초등학교 4학년쯤 일거에요. 어느 날, 친한 친구를 우리 집으로 초대해선 엄마 몰래 달고나를 해 먹던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신났죠. 친구와 함께한 작품으로는 ‘달고나 황금색 똥’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대접 바닥으로 꾹 눌러 모양도 만들어 보고, 더 빵빵하게 부풀게도 해보고. 비율에 따라 부푸는 모양이 다른 게 얼마나 신기하던지! 정신없이 만들다 보니, 어느새 다 먹지도 못할 만큼의 양을 만들어버렸답니다. 친구에게 절반을 주고 그 설탕 덩어리를 와그작와그작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요. 아, 물론 어떤 달고나에서는 인생의 쓴맛도 맛보기도 했답니다.


그날 저녁, 엄마는 퇴근하자마자 저녁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거실에서 티비를 보던 저는 갑작스럽게도 엄마의 잔소리 폭격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다들 눈치채셨죠? 나중에 알고 보니 -당연하게도- 국자를 다시는 쓸 수 없게 만들었더라고요. 하지만 당시에는 국자가 새카맣게 탄 것을 몰랐던 건지 -아니면 신경 쓰지 않았던 건지- 설거지를 너무나 대충 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모른 저는 엄마의 불호령에 너무나 놀랐죠. 제 나름 ‘어쨌든’ 완벽한 마무리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들킨 것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그날 잠들기 전까지 별별 상상을 다 해봤습니다. ‘엄마는 대단한 사람이구나. 어떻게 알았지? 하느님이 알려주나? 귀신이 알려주나? 왜 엄마는 모르는 게 없는 거야, 진짜...’ 서툰 솜씨의 설거지 때문에 들킨 것임을 알아채지 못했던 그 당시의 저는 다음에는절대 들키지 않기로 다짐하며 잠들었답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부끄러운 순간이네요. 


나름대로 진짜 말썽 없이 자랐다고 자부했는데, 그때의 저를 돌아보니 생각해보니 전혀 아니었음을 다시 느끼네요. 며칠 뒤에 달고나 만들기를 다시 시도했다가 또 혼난 건,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그렇게 혼나면서도 달고나 만들기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국자를 태우지 않고 만드는 방법을 친구에게 배워서 완벽하게 만들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저의 노력 못지않게 도움이 되었던 건, 엄마가 엉망이 된 국자를 ‘달고나 전용 국자’로 허락해 준 덕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의 열정에 두 손 들었던 거겠지요. 설탕 한 봉지로 달고나를 만들며 알게 된 것은, 실패의 힘이었습니다. 딛고 일어서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 실패의 경험은 마법의 주문처럼 다른 실패를 마주했을 때 별것 아닌 것으로 만드는 마법을 부렸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 힘으로 산 것은 아닐까요, 물론 엄마의 현명한 양육방식은 시대를 앞선 것이었음을 두 아들의 엄마가 된 후 알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육아 전문가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모든 것에 완벽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모든 엄마는 완벽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기 마련이죠. 화를 덜 내고, 친구같이 지내면서도 엄마의 권위를 잃지 않아야 하며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고도 해요. 다 타버린 국자를 본 그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제가 엄마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아마도 내가 없는 시간에 혼자서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엄마보다도 더한 잔소리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때의 엄마도 저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엄마가 없는 시간까지도 완벽하고 싶은 마음. 그래서 요즘은 엄마가 내 엄마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의 ‘엄마로서’ 쉽지 않은 배려가 있었기에 저는 실패와 그 실패를 딛고 스스로 다시 일어서 성장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된 지금의 저는 수많은 실패로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엄마로서의 성장은 너무나 어렵고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옛 시절, 저보다 어린 나이에 엄마라는 무게에 부딪혔을 나의 엄마는 어떻게 버티고 성장하셨까요? 지금은 ‘할머니’로서 제3의 인생을 사는 나의 엄마. 엄마로서 겪었던 노력을 손자들에게까지 보이는 모습들을 보며, 엄마는 또 다른 성장의 결과, 완벽한 할머니로 다시 태어났음을 보게 됩니다.


그런 나의 엄마를 보고 있음에도 여전히, 도착점이 안 보이는 엄마의 인생길이지만 그 끝을 나 대신 보게 될 나의 아이들을 위해 더욱 완벽으로 가는 엄마로 걸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오늘, 저는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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