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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제이 Nov 0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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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정주행 하는 드라마의 길에는 휴게소가 없다.


드라마 좋아하세요?

저는 드라마보다 영화나 뮤지컬을 좋아하는 쪽입니다. 요즘에는 OTT의 발전으로 집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어 참으로 편한 세상이지요. 아, 제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음 편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드라마도 몰아서 ‘정주행’하는 것을 좋아하지요. 특별히 일이 없는 주말이면 영화나 드라마를 몰아 보는 즐거움에 주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드라마의 장르는 특별히 없지만, 장르가 애매한 것은 드라마도, 영화도 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로맨스+미스테리의 조합이라던가, 경찰물+로맨스 등의 장르 말이죠. 특히 법정물과 로맨스… 적고 보니 로맨스를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따뜻한 로맨스 드라마도 좋아한답니다. 마음에 드는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는 아직 만나지 못한 것 같지만요.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저는 장르물을 좋아합니다. 흔히 미스테리나 경찰물을 장르물이라 말하죠. 이런 장르물을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는 보통 이런 장르의 드라마들은 옴니버스처럼 여러 사건이 엮여 한 작품을 만들었기에, 중간에 못 보더라도 궁금증이 덜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일에도 조금씩 볼 수 있기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싫어요, to be continued) 두 번째 이유는 대부분 열린 결말이 없는 장르의 특성이 좋습니다. 사건이 시원하게 해결되는 장면을 보면 사이다 한 잔 들이켠 기분이죠. 세 번째 이유는 개성이 강한 배우들을 볼 수 있어서입니다. 물론 다른 장르들에도 좋은 배우들이 많이 나오지만, 장르물은 그들의 개성이나 배우들의 변신하는 멋진 모습을 보는 재미가 큽니다.


OTT를 통해 본 감명 깊었던 작품은 몇 해 전 방영되었던 ‘눈이 부시게’라는 작품입니다. 그때 당시 장르물을 정주행을 다 끝낸 후, 더 볼 게 없을까 돌아보던 차에 한 여배우가 환하게 웃는 모습에 끌려 보게 되었습니다. 마침 휴가일 때라 시작한 이 드라마는 이틀 동안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잠도 줄여가며 3박 4일의 휴가 기간 중 1박 2일을 새며 정주행을 마쳤을 때의 제 얼굴은 눈물로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이틀 동안 집안일을 하면서도, 수업 준비를 하면서도 본, 이 드라마는 타임 리프라는 장치로 이끌어가는 신기한 이야기인 줄 알고 가볍게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초반 이후부터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눈물이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에 흔히 보던 로맨스이거나 가족의 훈훈한 이야기들과는 다른 강한 감동과 여운을 안겨주었습니다. 시계를 통해 여주인이 시간을 되돌리다가 결국 70대 노인이 되어 겪는 이야기를 통해 (주제는 다른 방향이지만요) 나의 소중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내야 할지 성찰해 보는 며칠이 되었습니다.     


나를 보면 알잖아. 니들이 가진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엄청난 건지.      


주인공 혜자의 대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입니다. 전 이 대사를 들으면서 만일 제게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손목시계가 있다면 과거의 어떤 날로 돌아갈지 고민해보았습니다. 잠시 잊고 있던 좋은 날로 갈까요, 아니면 다시 되돌리고 싶은 지난 시간의 어느 때로 잠시 돌아갈까요? 


저는 되돌리고 싶던 과거를 지나, 의미 없이 허비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다시 돌아간 그 시간의 저는 공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때로 정말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저는 후회 없이 신나게 놀거나, 반대로 시간을 쪼개고 쪼개 미친 듯이 공부하여 현재의 저를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큽니다. 그만큼 제대로 한 것이 없던 저는, 다시 돌아간다면 무얼 하든 아쉽다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그 시절을 보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날로 채워진 고등학교 시절을, 열정으로 –어떤 식의 열정이라도- 채우고 채워 꽉 찬 결과물을 받아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며 저의 지난날을 회상해보니, 제 글을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의 바꾸고 싶은 과거는 언제인지 정말 궁금하네요.


갑작스레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드라마의 시계와는 반대로 미래로 통하게 하는 시계가 있다면 어떨까요? 그 시계를 사용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미래의 어떤 모습을 기대하시나요? 저는 작은 작업실에서 꼬마 작가들을 키워내는 저를 기대합니다. 꼬마들의 글을 엮어 책으로 만드는 과정까지 함께 하는 이 일은, 아마도 글 쓰는 저와 가르치는 제가, 즐기면서도 잘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미래의 모습일 것 같습니다. 만약 실제로 이런 미래를 만나게 된다면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하다는 호기심으로 작은 출판사에 취직했던 스물여섯의 저, 학원에서 많은 아이를 만난 저,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제가 만든 ‘등가교환’(작품 속 혜자의 대사) 된 미래이겠지요.     


과거 혹은 미래의 어딘가에서 지금의 저를 바라본다면, 오늘의 저 역시 당연하고도 엄청난 날을 살고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드라마 속 혜자의 대사를 곱씹으며, 지금 주어진 시간을 더 나은 가치로 바꿔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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