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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제이 Nov 08. 2024

목적지가 선택되었습니다(21)

#21. 꿈길 속의 아이

          


여기는 늘 지나는 동네 입구. 그곳에 있는 나는, 길 너머의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어깨를, 두텁게 뒤덮고 있는 짙은 보라색의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다. 코끝으로 스산한 바람이 머물다가 스친다. 시골의 잔향을 남기고 바람은 그렇게 멀어진다. 학교에 메고 간, 내 등보다 훨씬 커다란 가방이 자꾸만 내 어깨를 벗어나려 해서 나는 어깨끈을 다시 한번 꽉 잡아 쥔다. 내 움직임에 반응이라도 하듯, 뒤에서 밀려오는 안개 더미들이 발목을 감싸 쥔다. 길 왼쪽에 있는 농업고등학교에서 소들이 한바탕 운다. 지금이라고, 빨리 벗어나라고 말해준다. 고개를 돌려, 지나온 아스팔트 포장길을 쳐다본다. 조금 전 지나왔을 남자 중학교는 이미 안개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다시 돌려 발끝을 바라본다. 우리 동네는 여기, 비포장 도로에서 시작된다. 나는 간신히 발을 움직여서 아스팔트 경계를 문지른다. 내 발끝이 비포장된 흙에는 닿지 않는다. 더 이상 닿지 않는 발은 안개에 잡힌 걸까, 내가 못 하는 걸까? 발의 움직임은 내게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고 두려운 마음을 먼저 가르친다. 두려움의 범인은 안개일까, 나일까. 고개를 들어 동네 안쪽을 바라본다. 아직은 안개가 도착하지 않은 동네 중간에 서 있는 가로등이 주황색 눈을 깜빡인다. 깜빡, 깜빡. 마치 얼른 집으로 오라는 듯, 한 박자씩 신호한다. 두려움에 떨어지지 않는 발을 간신히 떼어보지만 결국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뒷걸음질 친다. 그렇게 다시 남자 중학교 앞이다. 중학교 옆으로 난 골목길로 돌고 돌아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감각만으로 달리고 달린다. 흐르는 땀방울을 닦을 새도 없이 달리다 보면, 우리 집으로 통하는 뒷길이 보인다. 뒷길에는 오래전 우리 집에 살던 커다란 진돗개 복실이가 앉아서 꼬리를 흔들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그제야 눈을 떠 아침을 맞이한다.     


꿈이었다. 

꿈속의 나는 매번 달랐다. 어떤 날은 뒷걸음질도 치지 못하고 밤새 그 자리에서 땀만 흘리다가 잠에서 깨고, 또 어느 날은 학교에 끌려 들어가곤 했다. 벌써 30년 가까이 트라우마처럼 같은 내용의 꿈은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아이들의 육아를 하며 어른과의 대화가 단절된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또다시 이 꿈을 꾸었을 때 비로소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이 꿈은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든 시기에 –혹은 친구들과 문제가 있었을 때, 그리고 기댈 사람이 필요할 때- 반복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었다. 꿈은 나를 그저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정신의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을 알려주는, 나의 몸에서 보내는 ‘신호등’이었다. 하나의 현상도 내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이상하게도 이 사실을 깨닫고 난 후부터는 더 이상 그 꿈을 꾸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나를 괴롭게 하는 것에서 멀어지고,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가까이해서 그런 듯하다. 예전의 나는 아무리 관계에 지치더라도 나를 괴롭히는 것들을 거부하지 못했다. 그러나 인생에서의 몇 차례의 경험 후, 나의 편안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나를 부정적으로 만드는 것 (또는 인간관계)를 하나, 둘 끊어내려 노력했다. 특히 연락을 주고받는 가까운 관계가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 관계를 정리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노력이 가장 필요했던 관계는 모녀지간이었다. 당시의 나는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주던 엄마와도 6개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이런 내 행동으로 인해 엄마는 화도 내고 서운함을 보이기도 하셨다. 워낙 까만 유리막 같은 분이시라, 속이 안 보이는 듯해도 바로 옆에서 보면 그 마음이 조금조금 비치시니 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서운함을 모른 척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나를 향한 엄마의 말끝은 항상 나를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내가 세상에서 사라질 것 같다는 심정이 들던 어느 날부터, 나는 엄마에게 고민 상담을 하지 않았다. 너무나 객관적이기만 한 엄마의 상담에 나의 마음가짐을 단단히 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즉, 엄마의 말끝을 잘 피하거나 맞더라도 그 상처를 금방 아물게 할 수 있는 <정신 무장>이 필요했던 거다. 신기하게도 이런 관계의 정리만으로 –설령 이기적일지라도- 그 꿈을 차츰 덜 꾸게 되면서 내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편안함을 통해 내가 강해지니 당연히 지금은 엄마와의 관계는 두말할 것 없이 예전보다 좋아졌다. 아니, 이제는 대화할 때마다 더욱 가까워진다는 느낌이다. 


이런 경험들은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주변인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간혹 주변인의 문제일 때도 있지만, 그것 역시 내 주변에 그들을 그냥 두는 나 역시 그 원인 중 하나는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타인보다 진짜 나를 모르는 내가 가장 큰 가해자가 아닐까 한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관계는 나와 나의 관계다. 나, 나의 생각, 나의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든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나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관계를 만들고 유지한다면, 사람과의 사이에서 상처 주지 않고 받지도 않는, 오히려 더 나은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어떠한 관계망에서 지내더라도 자기 자신을 가장 중히 여기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 며칠 전 거의 십 년 만에 이 꿈을 다시 꾸었다. 하지만 이제는 꿈이 주는 신호를 알기에 예전처럼 불안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어떤 트라우마 때문에 꾸게 된 것이지만, 이 꿈은 내 정신 건강의 ‘바로미터’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먼 훗날, 언젠가 다시 꾸게 될 꿈은 조금은 더 아름답게 바뀌길 바라며 내가 꿨던 꿈을 나름대로 고쳐본다. 이제는 점점 그 무서웠던 꿈의 길이 두렵지 않다. 그 길이야말로 나를 보듬어주고 걱정해 주는 길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나는 이제 꿈의 길 위에서 또 다른 꿈을 만든다.      



여기는 늘 지나는 동네 입구. 그곳에 있는 나는, 길 너머의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어깨에 번진,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짙은 보라색의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다. 코끝에 시원한 바람이 머물다가 스친다. 시골의 잔향을 남기고 바람은 그렇게 멀어진다. 학교에 메고 간, 내 등보다 훨씬 커다란 가방이 자꾸만 내 어깨를 벗어나려 해서 나는 가방을 벗어던진다. 내 움직임에 반응이라도 하듯, 뒤에서 밀려오는 안개 더미들이 발목을 감싸 쥔다. 가방을 벗어던진 나는 가벼워진 몸으로 안개 위로 떠 오른다. 길 왼쪽에 있는 농업고등학교에서 소들이 한바탕 소리 지른다. 소들의 울음소리에 나는 한 번 더 붕 떠올랐다가 살며시 바닥에 내려앉는다. 어느새 나는 비포장 흙길 위에 서 있다. 고개를 돌려 지나온 아스팔트 포장길을 쳐다본다. 조금 전 지나왔을 남자 중학교는 이미 안개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다시 돌려 발끝을 바라본다. 우리 동네는 여기, 비포장도로에서 시작된다. 나는 다시 발을 움직여서 아스팔트 경계를 문지른다. 발의 움직임은 어느새 자유로워졌다. 자유로움의 주인은 안개일까, 나일까. 고개를 들어 동네 안쪽을 바라본다. 아직은 안개가 도착하지 않은 동네 중간에 서 있는 가로등이 주황색 눈을 깜빡인다. 깜빡, 깜빡. 마치 얼른 집으로 오라는 듯, 한 박자씩 신호한다. 이제는 자유로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해 내달린다. 머릿속에는 두고 온 가방 생각에 ‘아차’ 했지만 돌아가지 않는다. 집이 보인다. 진돗개 복실이가 보인다. 혀를 내밀고 뛰어온 복실이와 집으로 향하는 나는 꿈에서 깨어나는 나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또 만나, 내일의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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