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중앙선을 넘지 마시오.
우리는 최후 방어선이라는 의미로 ‘마지노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합니다. ‘마지노선’이란 단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국경에 세워 독일에 대항했던 방어선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요즘에는 ‘넘어서는 안 되는’이라는 의미가 담겨 쓰이고 있지요.
그렇다면 도로 위의 마지노선은 무엇을 말할까요. 아마, 중앙선이 아닐까요? 우리나라의 중앙선은 운전석의 가까이에 위치합니다. 겁이 많은 저는 그 중앙선이 무서워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후에도 15년이 넘도록 운전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넘어서는 안 되는’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은 중앙선뿐만 아니라 도로 위의 모든 선을 잘 지키며 안전하게 운전하고 있습니다.
선을 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도로 위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에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매너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매너를 지키는 데 있어, 방해되는 것이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정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 문화 자체는 매우 좋은 문화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특히 여전히 시골에서 느낄 수 있는 정겹고 특수한 문화 중 하나죠. 하지만 때로는 ‘정’이 가진 특수성, 친밀함 때문에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라고 말할 수도 있어 매너를 지키는 데 불편함도 준다고 생각합니다. 흔하게 초면에 나이, 사는 곳 또는 부모의 직업을 묻는 것을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어떤 무례한 사람은 흔치 않게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묻기도 합니다. 제가 최근 들었던 최악의-매너에 반하는-질문은 연봉이 얼마인지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질문을 하는 이들을 여러 번 보게 되고 몇 번의 불편한 감정을 느낀 후, 사람과의 관계에서 선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20세기에 태어난 저도 이해하기 어려운 소통 문화를 지금 세대들은 당연히 눈살을 찌푸리며 싫어하기 마련이지요. 물론 사적인 질문을 하는 것은 관심을 표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관심을 표하기 이전에, 본인이 보이는 관심에 대해 상대가 불편해하는 것을 알아채는 센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나보다 어리거나 후배라는 이유로 대화 상대의 기분을 살피지 않는 대화는 더 이상 대화라 말할 수 없지요.
세상은 넓고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기 때문에 언제라도 끼어들어도 되는 흰 점선을 내보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잠시도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노란색의 주정차금지선을 보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든 중앙선이 있기 마련입니다. 상대방이 중앙선을 내보이는 경우라면, 그 사람의 마지노선을 내보이는 것이므로 주의해야 하는 것이죠. 만약 그 선을 알아채지 못하고 넘어버린다면 당연히 둘 다 크게 다치는 사고가 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대화와 소통으로 상대와 나의 마음의 선을 살피며 감정을 교류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 명이 함께일 때, -저처럼- 조금 더 예민해지는 사람들을 만나곤 합니다. 날카로워지는 예민함이라기보단 조심성이 극에 달한 편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인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조심성이 느껴지지 않는 상대는 오랫동안 기억해 두고 곁을 내어주지 않는 편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마음이 불편하기에 함께 하는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지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인데도 저나 남편의 연봉을 물어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물론 상대는 그런 이야기를 하며 저와 더욱 친해지고 싶었겠지요. 그때 저의 마음에서는 꽤 커다랗고 불편한 바위가 흔들리는 것을 느끼게 되었답니다. 사생활이 파헤쳐지는 기분은 비단 유명인들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저와 비슷하게, 사람들과 친해질 준비가 오래 걸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조심해야 하는 점이 있습니다. 친해지려고 한 번에 서너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물론 예민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에서도 단계가 필요한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공부도 기초부터 차근차근 밟아가야 더욱 단단하게 학습되듯이, 친해지는 과정 역시 첫 단계부터 서두르지 않고 차근히 밟아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지요. 이 과정을 묵묵히 보낸다면 분명 자연스레 상대방의 중앙선 위치를 서로 살피며 매너를 지키게 되어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상대의 중앙선을 확인하며 다가서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서로가 보이지 않는 중앙선을 지키고 그 선을 벗어나지 않도록 운전을 하게 되면 안전하고 평화로운 드라이브가 되듯이, 인간관계에서도 서로의 선을 잘 살펴주고 안전거리를 확보해서 급정거나 급발진이 없이 편안한 인생의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