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새끼손가락 걸고 걸어요.
약속은 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야. 지키라고 있는 거지.
제가 항상 아이들에게 잔소리처럼 하는 말입니다. 말에 있어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말은 아마도 ‘약속과 믿음’ 일 테니까요. 오늘은 그중 ‘약속’이라는 말의 무게감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저의 고등학교 친구 중 약속을 쉽게 여기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약속 시각을 어기는 것뿐만 아니라 약속 자체를 잊는 경우가 참 많았지요. 친구이기에 그 단점을 알면서도 언젠가는 고쳐질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친구 관계를 이어왔지만 결국, 고쳐지지 않은 채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성인이 되어 만난 또 다른 친구도 비슷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남자친구가 밖에서 기다리는 중에도 여유롭게 머리를 말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 제가 대신 불안해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친구들을 몇몇 겪다 보니, 저는 그때마다 약속의 의미를 매번 정의(또는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 결과 제게 있어 약속이란 절대 가벼이 대해서는 안 되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절대적 믿음이라는 것으로 정의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어기는 게 습관이던 친구들은 오래 지나지 않아 저와 멀어지게 되었지요. 네, 맞습니다. 약속은 결코 쉽게 시작해서도, 쉽게 저버려서도 안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약속’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니까요.
그래서 저는 약속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첫 약속을- 가까이하지 않으려 합니다. 물론 저 역시 약속을 깨지 않으려 노력해야겠지요. 사실 저 또한 생각해 보면 실수로 잊어버려 혹은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지켜지지 못한 약속은 약속의 상대가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는 경우에만 가능한 것일 뿐, 약속을 어긴 이가 당연히 이해를 원하게 된다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문제를 지닌 이가 과연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약속이라는 매개체는 ‘상대가 나와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점으로 충분히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어떤 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이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저 역시 기억력이 좋지 않아, 약속 관리를 잘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약속을 잘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으로는 그동안은 메모지를 활용해 왔으나, 메모지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곤란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다이어리와 스마트폰 캘린더 애플리케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반복되는 일정은 캘린더의 알람을 사용하면서, 상담 등의 중요한 일과 그리고 개인적인 일들을 다이어리에 한 번 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누구나 쉽고 편하게 관리하는 방법이니, 한 번쯤 시도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다이어리만 사용하던 예전보다 좋아진 점은 시간이 되면 알람이 울린다는 것입니다. 이 점이야말로 약속을 위해 스마트폰의 유용함을 잘 활용하는 것 아닐까요?
더하여 약속을 지키는 데 있어서, 이런 노력보다 더 중요한 점은,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는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약속을 쉽게 어기는 사람은 일부러 어기는 것이 아니라 지킬 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자기도 모르게 약속해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나의 상황을 잘 살피며 약속하는 요령을 많은 사람이 터득하면 좋겠습니다.
저의 약속 습관과 함께 제가 만난 약속을 쉽게 생각했던 몇 안 되는 그 친구들을 다시 떠올려보니, 약속이라는 가치가 새삼 무겁게 느껴집니다. 글의 서두에서 말했듯, 제가 두 아들에게 가르치는 가장 큰 가치는 ‘약속과 믿음’입니다. 그중 더욱 강조하는 것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지요. 믿음이라는 것은 신뢰의 또 다른 말이기에 약속을 지키는 작은 실천으로 성취할 수 있는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을 보면 으레 “저 사람은 참 믿을만해.” “믿을만한 사람이니 잘 지내봐.”라는 첨언을 하지 않나요. 믿음이라는 말 안에는 ‘약속을 허투루 하지 않는다.’는 대전제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니 이런 말들을 하지 않나 합니다. 이렇게 믿음을 얻은 사람은 믿음이라는 성을 무너뜨리지 않으려 더욱 성실하게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볼 수도 있고요.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맺는 여러 관계의 작업 중 가장 섬세하고도 어려운 작업은 인간과 인간이 서로 간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서로’라는 단어가 설명하듯 약속이라는 성은 어느 한쪽만 쌓는다면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오늘 밤, 새삼 세상을 살아간다는 고독과 고단함은 무너져가는 신뢰와 믿음이 만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글을 써 내려가며 저도 약속에 대해 길게 생각하며 정의해 보았지만, 혹여 저 또한 우리 아이들, 아니 누군가와의 약속을 가벼이 여긴 적은 없었는지 반성해 보며 약속의 무게감을 다시 한번 되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