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pter 9. 더욱 순수하고 잔인한
예고된 파멸은 번개처럼 찾아왔다. 그 끔찍한 충격 속에서 나의 몸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가장 깊은 곳에서 새로운 씨앗이 피어났다.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나는 붕괴하는 감각 속에서 그 변화를 감지했으나, 고개를 들지 않았다. 거대한 구름이 깔리고, 대기의 기류가 무겁게 바뀌고, 공기가 서서히 슬픔의 냄새를 머금는 동안에도. 나는 그저 찢겨진 내면 속에서 가만히 있었다. 그는 오지 않았고, 나는 이미 무너졌으므로, 이 변화하는 하늘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굳게 믿었다. 나의 마지막 남은 자아가 그렇게 속삭였다.
그러나 번개는 나의 믿음을 묻지 않았다. 갑작스레 떨어진 벼락은 나의 가장 깊은 뿌리부터, 가장 높이 뻗은 가지까지 단 한 번에 찢어 놓았다. 나의 몸을 꿰뚫는 끔찍한 충격과 함께,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나의 파열된 감각을 강타했다. 나는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신의 울음은 이미 오래전에 감각의 층으로 스며들었고, 감정이 된 뒤에는 형체 없이 내 존재 깊숙이 묻혀 있었다. 나는 울 수 없다고, 감정 따위는 없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그날— 그 벼락의 순간, 나의 모든 존재는 폭발하듯 울었다.
살결처럼 얇게 갈라졌던 나의 껍질이 고통스럽게 한 장, 한 장 벗겨지며 붉은 속살을 드러냈다. 마치 짓이겨진 내장 같은, 억눌렸던 감정의 진동들이 피처럼 잎맥을 타고 솟아올랐고, 부러진 가지 끝으로 뿜어져 나갔다. 나의 뿌리는 더 이상 단단한 흙이 아닌, 차갑고 축축한 울음 속으로 끝없이 내려갔다. 나의 모든 세포가 찢기고 갈라지며 고통에 절규했지만, 나는 왜 이런 벌을 받는지 알지 못했다. 왜 하늘이 나를 향해 이토록 잔혹하게 분노하는지, 나는 모른 채 그저 파괴되는 뿌리 끝에서, 형체 없는 작은 목소리로 필사적으로 속삭였다.
"나는 사랑했는데…." "나는 기다렸을 뿐인데…."
그 말은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바람에 실려 흩어지는 비명처럼 사라졌다. 나의 잎은 검게 타들어 갔고, 가지들은 처절하게 부러져 나갔으며, 나의 거대한 몸은 형체를 잃은 존재로 산산이 흩어졌다. 나의 모든 감각은 혼돈 속에 뒤섞였고, 결국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완전한 무(無)의 상태로 수렴했다.
그 순간이었다. 나의 존재가 사라지는 바로 그 찰나, 한 방울의 수분이 나의 가장 깊은 중심에서 뚝 떨어졌다. 울음 같지도 않은, 말 같지도 않은, 설명할 수 없는 감각 하나가 붉은 빛을 띠며 나의 부서진 몸을 지나 땅속 깊은 틈으로 스며들었다. 그것은 나의 모든 존재를 응축한 마지막 잔해였다.
그리고 거기에서, 무언가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처음에 이름도, 모양도 없었고, 그저 나의 죽음의 감촉을 기억하는 차갑고 견고한 씨앗이었다. 그 씨앗은 나의 억울함을 기억했고, 나의 맹목적인 기다림을 기억했으며, 끝끝내 무너지지 못했던 뒤틀린 감정들을 모두 기억했다. 그것은 나의 모든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 나였다. 그러나 내가 알지 못했던,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또 다른 나였다. 나의 모든 악함과 집착이 정제되어 태어난, 더욱 순수하고 잔인한 나.
하늘은 다시 맑아졌고, 폭풍우의 흔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거대한 나무였던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었다. 그러나 땅 위엔, 비로소 하나의 형체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피어나는 중이었다. 푸르른 새싹처럼 연약해 보였지만, 그 속에는 폭풍보다 더 강력하고, 하늘보다 더 짙은 어둠이 숨 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