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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 yuni Apr 27. 2020

안녕, 나에 지나간 날에 대해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위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어린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나에게 특별한 행복감을 안겨다 준다. 생기 있어 보이는 행동과 귀여운 말씨, 조금은 수줍음을 머금은 미소에는 어른들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순수한 아름다움이 있다. 요즘 학생들은 어른 뺨칠 정도로 영악하고 무섭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그들 속에 함께하다 보면 그 말이 현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른들에게 반항하거나 거리를 두고 대하는 경우는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을 때이다. 타인에게 어떤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대하거나 권위적인 모습으로 상처 주는 경우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결코 상처 주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을 믿고 맡겨주시는 어머님들도 아이들처럼 늘 밝게 웃으며 배려해 주신다. 나는 수업을 하면서 좋은 기운을 얻는다.


저마다 다 다르지만 순수한 아름다움이 머물러있는 학생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작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풀꽃같이, 아이들은 때 묻지 않은 자연 고유의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다.

 나도 그런 아름다움이 머물러 있을 때가 있을까 가끔 생각한다. 나의 학창 시절은 지극히 평범한 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살다가 고등학교 때 차츰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다. 평상시 말이 별로 없는 편이었는데 마음에 담아놓은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연극반 동아리 활동을 했다. 전국 대회도 몇 번 나갔고 그 사이 연기상도 몇 번 받았다. 공부보다 연극 부 활동이 더 좋아서 자연스럽게 연극영화학에 진학했고 대학을 졸업한 후부터는 아나운서를 목표로 삼고 시험을 치러 다녔다. 아나운서 쪽에 소질이 있었는지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도 1, 2차는 쉽게 통과했다. 조금 더 노력하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나에게 그 꿈을 실현할 수 없는 상황이 생겼다.

 나는 그 당시 교회를 무척 열심히 다니고 있었다. 모 방송국 아나운서 3차 면접을 남겨놓고 목사님께 이 일을 상의드렸다. 하지만 예상외로 목사님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니 그 일을 당장 그만두라고 하셨다. 심지어 3차는 떨어질 것이니 시험도 치러 가지 말라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수많은 고민에 빠졌다. 면접이 당장 그다음 날이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나는 3차 면접을 보러 방송국에 갔지만 좋은 마음으로 시험을 치를 수 없었고 면접시험에서 떨어졌다. 그 후로도 목사님은 아나운서 시험 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시험도 보지 못하게 방해했고 나는 아나운서 시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같으면 교회를 다니지 않더라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조금이나마 권위적이고 강한 사람들이 말하면 그 말에 쉽게 흔들렸던 것 같다. 그때는 강한 사람들에게 내 의견을 말하지 못했다. 아니, 그전에 내 마음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조차 잘 구분하지 못했다. 겉모습만 어른이었지 마음은 약하고 잘 흔들리는 미숙한 존재일 뿐이었다.

 

 그 후 나는 원치 않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니다 그만두기를 반복했고 지금의 논술교사가 되었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아이들을 대하는 일이 좋아서 8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사실 처음 몇 년 동안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후회와 스스로에 대한 원망 때문에 일을 하는 내내 괴로웠다. 나에게 함부로 대했던 그때 그 목사님에 대한 원망과 미움, 스스로에 대한 좌절감은 현실에서 주는 작은 기쁨과 행복마저 느낄 수 없게 만들었다.

 아마도 아나운서가 되었다면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일하는 즐거움을 더 크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타인에게 부러움과 특별한 관심을 받으며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보다 젊을 때, 그곳에서 일하는 나와 많은 것이 통하는 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예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그 아픔 때문인지 나는 함께하는 학생들에게 다소 부족한 어른으로 보일지라도 친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려고 노력한다. 되도록 내 의견을 전하는데 중점을 두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가 문제를 찾고 해결하게끔 도와주려 한다. 삶을 살면서 보다 중요한 일은 순종적이고 착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자신의 가치관을 분명하게 갖고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알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나는 비록 타인에게 주목받는 화려한 삶을 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상처 주지 않는 맑은 학생들과 나를 믿고 맡겨주시는 따뜻한 어머님들과 함께해서 행복하다.         


  나의 날은 지나갔다. 후회했던 내 삶의 흔적들이 당신에게는 희망의 별이 되어 빛났으면 좋겠다.

 안녕, 나에 지나간 날들아,

안녕, 앞으로 다가올 날들아.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위해 오늘도 힘을 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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