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니 yuni Apr 27. 2020

초승달

-작은 시작, 작은 도전이었어도-

 


 수업을 마치고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을 바라보는 일을 나는 좋아한다. 회색의 건물 위에 떠 있는 어슴푸레한 달빛은 하루 일과를 마친 나에게 수고했다고 위로해 주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보름달을 바라보는 날이면 둥글고 푸근한 달이 내 마음을 받아주는 것만 같아 마음속에 담아 둔 이야기들을 꺼내놓곤 한다. 그리고 내 마음의 소원을 들어줄 것만 같아 오래도록 간직한 꿈을 간절히 빌어보기도 한다. 온통 회색인 이 도시에서 어딘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해 줄 것만 같은 신비로운 달과 별. 밤하늘을 바라보며 걷는 그 시간 속에는 무한한 세계의 꿈을 꾸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느새 하늘을 날아 저편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 같은 새로운 세계 속으로 내 몸과 마음은 신비로운 달나라로 향하고 있다.




 특히나 누군가 새까만 도화지 위를 손톱으로 긁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웃는 모습이 예쁜 아름다운 아가씨의 눈웃음 같기도 한 초승달을 바라볼 때면 까만 밤의 분위기에 취하곤 한다. 새까만 하늘, 총총히 떠 있는 별 사이에 작게 떠 있는 초승달. 그 아래 존재하는 작은 나. 초승달은 언젠가 완전해질 보름달을 꿈꾸는 것 같다. 초승달은 불완전한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아 정겹다. 초승달의 분위기에 이끌려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걷고 또 걸을 때가 있다. 어딘가 저 너머에 존재하는... 마음 잘 맞는 친구를 만난 것 같아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한없이 늦추고만 싶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에 빠져 보다 완전한 삶을 꿈꿀 때가 있었다. 능력을 키우고 싶었고 남들에게 시선 받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논술과외를 시작하기 전, 학습지 회사를 다닐 때의 내가 그랬다. 회사에 능력 받는 교사가 되고 돈 잘 버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주말도 없이 일했다. 하고 싶었던 아나운서를 포기한 그때의 나에게 있어서 회사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일은 내 안의 결핍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열쇠라고 믿었다. 하지만 남보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일이었고 여린 성격 탓에 회사에서 원하는 능력 있는 교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본사 소속인 정직원은 나보다 어린 선생님들이나 가정의 가장이 되어야 하는 남자 선생님들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처음 시작하는 교사 일도 아직 부족한 능력 탓에 어머님들과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웠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은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하루아침에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좋은 교사가 되기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회사에서 원하는 좋은 교사는 영업력이 있어서 회사의 수익을 올려줄 수 있는 교사였다. 모든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회사에서 인정받는 교사가 되고 싶어서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할 수 없는 능력치 이상의 성과를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일들을 무리하게 해내려 했다. 그 사이 나는 톱니바퀴 속 하나의 부속품이 되어서 기계처럼 움직였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갔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시간과 하늘을 바라보며 사색을 하는 시간마저도 잃어버렸다. 지치고 병든 스스로를 대면하던 어느 순간에,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만 싶었다.




 하지만 돈 버는 일보다 훨씬 좋은 것이 한 가지 남아 있었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마음 고운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선물해 주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고 교육에 관한 공부를 시작해 나갔다. 그리고 수업을 늘리고 돈을 버는 일에 대한 관심을 돌려 함께 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삶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책 속에 나와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깨닫게 하는 시간을 마련해주려 노력했다.

 


 

 회사 없이 혼자서도 수업을 꾸러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을 때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 과외를 시작했다. 처음 한동안은 일이 없어서 돈을 벌기가 어려웠다. 어떤 날에는 회사 다닐 때보다 힘든 일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기도 했다. 내 수업이 마음에 안 들어 일곱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그만둔 적도 있었고 어느 해에는 반 이상이나 되는 학생들이 한꺼번에 그만두는 바람에 생계유지마저 어려워진 적도 있었다. 주체할 수 없이 비어버린 시간들은 삶을 무료하고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도 이 길에 대해서 후회하지는 않았다. 작은 수업이지만 그 안에 큰 무엇인가를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도 보람을 느꼈다.

 하나하나 차근히 해나가다 보니 어느새 수업이 늘어 회사 다닐 때보다 개인 시간이 많은데도 수익은 더 많아졌다. 모든 일이 시간이 흐르고 때가 되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결과물들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결핍을 가지고 있다.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결핍을 들여다보고 사랑하는 방법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사회에서는 노력해서 성공하라고는 가르치지만 자신 안의 결핍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하는 법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가득 채워진 보름달을 보고 사람들은 내일의 소망을 빈다. 보름달처럼 완전해질 어느 날을 꿈꾸면서...


 

 하지만 흠집 같은 초승달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결핍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스스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행복은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초승달을 바라보며 그 어떤 달보다 사랑하고 있다.     


나의 도전, 나의 시작은 초승달과 같았다. 완전하지는 못했지만 그 나름의 소소한 아름다움으로 빛났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전 05화 때론 친구 같은, 나의 별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