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지난여름, 계곡에 놀러 갔을 때 온통 검은색과 회색으로만 보였던 바위와 돌멩이들이 푸른 물에 비추어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제와 똑같은 돌멩이들이었는데... 그 날 돌멩이들은 보석처럼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무채색에 우중충한 하늘도 비 온 뒤 햇빛에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듯, 삶이 때로는 영롱하게 빛나는 때도 있다. 스스로의 기분 탓일 수도 있고 모르는 어떤 힘에 의해 밝게 빛나는 것일 수도 있다. 가끔은 자연이, 관계가, 나를 비추고 힘을 내라고 응원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회색의 빛이 가득한 내 마음속 세상에, 컬러풀한 모습으로 가끔은 내 마음의 세상을 환하게 비쳐줄 때가 있다. 그 찰나의 순간에는 어린 시절에 잊어버렸던 감성의 호수가 내 마음속에 차오른다. 늘 이 마음을 느끼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을 찾는 것 같다. 마음에 반짝이는 자연의 보석들을 마음속에 간직하기 위해서......
읽은 책을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수업을 하고 있는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며 초록의 싱그러운 빛깔을 마주할 때가 있다. 아이들은 책 속의 등장인물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며 내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터놓는다.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지만, 때로는 친구같이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같은 감정을 느끼곤 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긴 시간을 나와 함께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인데, 나는 그 친구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면서 회색의 빛깔에서 영롱한 빛깔로 빛나는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중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논술 수업을 하던 한 학생이 있는데, 사춘기 한창이던 때에 나와 만났다. 그 학생의 집은 수업 지역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었는데 무더운 여름날 먼 길을 걸어가 그 친구의 집에 도착하면 아무도 없어 수업도 못하고 돌아온 적이 많았다. 나중에 그 친구가 고백하기를 수업이 너무 하기 싫어서 일부러 놀이터에 가 있거나 친구와 놀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중 3이 되던 어느 해에 진로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공부는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비가 오는 날마다 내게 피아노를 쳐서 카톡으로 보내주곤 했다. 많은 짐을 들고 불편하게 다니던 날마다 친구는 내게 마음을 위로해주는 선물을 주었다. 나는 친구의 진심 어린 마음과 누군가를 생각하는 예쁜 마음이 ‘나비’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누구나가 하고 싶어 하는 안정된 직업을 무조건 선택하지 말고 피아노 치는 일을 통해 타인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어보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피아노가 좋아 전공을 한 사람들 중에는 강사를 하면서 작곡을 하거나 작은 카페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실제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친구는 지금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며 불안한 마음과 초조함을 드러냈다. 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무엇이 중요하냐고 말했다. 시간과 속도를 쫓기보다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늘 기쁘고 행복할 수 있는 꿈을 찾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친구는 부모님과 상의 후, 예고 피아노학과 진학을 목표로 하겠다고 얘기했고, 논술 수업은 그만두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그 해 11월에, 친구는 자신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예고 피아노학과에 합격했다고... 감사했다고...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방탄소년단의 노래 중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진 솔로곡 Awake 피아노 반주도 선물로 보내주었다.
우리는 때론 타인에 대해 회색의 돌멩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수많은 기준과 판단의 잣대로 상대에게 상처주기를 반복한다. 타인은 나의 부족에 한없이 관대하길 바라면서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곤 한다. 나보다 어리고 작은 존재라면 그 기준은 더 엄격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난 똑똑하고 강하며 아름답고 갖춰진 어른들보다 작고 연약하며 조금은 부족한 듯 보여도 학생들에게서 찬란하게 빛나는 초록빛을 본다. 회색의 돌멩이가 햇살에 반짝이며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