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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땡땡 Feb 14. 2021

좌절과 성공의 기억들

사소하지만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 일들

  지금 생각해보면 별 일 아니지만 어린 시절엔 엄청난 좌절과 심지어 수치심까지 들었던 기억들이 있다. 그리고 반대로 사소하지만 나에겐 엄청난 성공이었던 일들도 있었다. 평소의 나는 스스로가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할 때가 많은데 어쩌다 내가 이런 상태(?)가 되었을까 기억을 더듬다 떠오른 사건들이 있어서 글로 적어보았다.


  좌절의 기억중 하나는 초등학교 1-2학년 무렵의 일이었다. 학교에서 매달 책을 한 권씩 정해서 그 책에 대한 시험을 보고 100점 맞은 아이들에겐 상도 주는 이벤트 비슷한 것을 한 적 있었다. 그 첫 시작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이 나는 '벌거벗은 임금님'. 몇 문제가 출제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문제만은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임금님께 옷을 만들어준 사람은?' 정확한 워딩이 아닐 수 있지만 대략 저런 문제였고 나는 답이 기억나지 않아 고민 끝에 '신하'라고 적었었다.(참고로 답은 재봉사였다)

  시험이 끝난 후 생각보다 아이들이 시험을 잘 보지 못했는지 선생님은 점수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며 문제풀이를 해주셨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내가 '신하'라고 쓴 문제를 풀이하다 선생님께서 '신하라고 쓴 애도 있었다'라고 말씀하신 순간 몇몇 아이들이 웃음을 터트렸고 그게 나라고 밝혀지진 않았지만 부끄러움과 약간의 수치심까지 느껴졌었다. 타고나길 내성적이었던 나는 그 전에도 학교에서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때 이후로 수업시간에 더욱더 말을 안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사건의 나름의 순기능이 있었다면 그 일이 자존심 상했는지 다음 책부터는 열심히 읽어가서 100점도 여러 번 맞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 있었던 사건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또 다른 일화는 글씨 연습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어린아이들이라 그랬는지 글씨를 연습해오는 숙제가 있었다. 그리고 잘 쓴 아이들을 두 명 정도 뽑아 공개적으로 칭찬을 해주시곤 했는데 나는 늘 최선을 다해서 또박또박 써갔지만 한 번도 호명된 적이 없었다. 칭찬이 고팠던 건지 글씨를 잘 쓰고 싶었던 건지 둘 다 였는진 모르지만 한 번도 뽑히지 않아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핑계 일진 모르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악필이다.


  위의 두 가지 사건과 다르게 내 나름대로의 성공의 기억도 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아파트 1층에서 살았었다. 즉,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탈 일이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 나에게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은 두려운 일 중 하나였다. 몇 살 때 일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저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 그때 다니던 학원이 위층에 위치해 있어서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타게 될 일이 생겼다. 엄청나게 긴장하며 엘리베이터에 탑승했고 (당연하지만) 무사히 학원에 다녀온 후 엄마에게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고 자랑한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소한 것에 이렇게 기뻐하던 시절도 있었구나 싶다.

  이 일처럼 남들에겐 별 일 아니어도 나에겐 엄청난 성공인 일은 또 있는데 바로 전화하기였다. 내성적인 나는 전화로도 낯을 가렸고 덕분에 배달 주문 전화도 엄청난 용기와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언제 처음으로 주문 전화를 걸어봤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처음 전화 주문을 성공했을 때도 해냈다는 안도감에 휩싸였었다. 사실 이 전화 공포증은 아직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배달앱이 나온 이후로 전화로 배달 주문한 적이 없다.)


  아무튼 이러한 사건들 모두 어른의 입장에선 별일 아니지만 어린 시절 나에겐 굉장히 속상하고 상처가 되는 기억이기도 하고 반대로 뿌듯한 기억이기도 하다. 그때의 나도 소심했던 터라 속상했던 일들에 대해선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에 내가 왜 자존감이 낮고 소심해졌을까 하고 기억을 더듬다 이 일들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까 싶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엄마한테 사실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때 많이 속상했었다고 털어놨다.

  지금이야 웃으며 얘기지만 이렇게 가볍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어린 시절 나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글씨는 여전히 못쓰지만 약간의 창피를 당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멘탈을 지니게 되었고, 아직 전화 공포증을 완전히 극복하진 못했지만 전보다는 덜 긴장하며 전화할 수 있게 되었고, 엘리베이터는 아무렇지 않게 타는(사실 없으면 매우 힘들어하는) 어른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그래도 괜찮은 어른이 되었구나 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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