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학엄마 Oct 24. 2020

다시 처음부터
-크론병과 살아가기

딸의 크론병 이야기 8

  9월 말 칼프로텍틴 수치가 4145가 나왔다. 칼프로텍틴 수치는 대변에서 검출되는 염증 수치이다. 정상 수치는 50 이하이고 민지는 처음 크론병 진단받았던 4월에 3057이었는데 그때 보다 더 올라간 것이다. 혈액 검사에서 확인하는 염증 수치는 4월 이후에 계속 정상 수치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대변을 통해 검사하는 칼프로텍틴 수치는 한 번도 정상수치로 내려온 적이 없었다. 제일 낮아졌을 때가 1113이었으니. 칼프로텍틴 수치가 제일 늦게 떨어지는 수치이긴 하지만 민지의 수치는 너무 높은 상태이다. 일단 다시 엘리멘탈과 엔커버 경장영양제를 먹으면서 추석, 한글날 연휴가 끝나고 그다음 주에 피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피검사 결과도 좋지 않으면 겨울까지 기다리지 말고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해 봐야 할 것 같고 대장 내시경 검사 육안으로 확인한 결과도 좋지 않으면 생물학 제제라고 하는 주사제 치료로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사실 민지 상태라면 이미 주사제 치료로 넘어갔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정도이다. 민지 본인이 힘들지만 음식도 잘 가려 먹었고 먹기 쉽지 않은 엘리멘탈 경장영양제도 꾸준히 먹어서 주사제 치료로 넘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때로는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힘들어하는 민지를 보면서 차라리 주사제로  넘어가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생물학 제제라고 하는 주사제 치료는 크론병 환자들이 많이 받는 치료 중에 하나이다. 스테로이드, 팬타사, 면역억제제라는 먹는 약으로 치료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 경우에 주사제 치료로 넘어가게 된다. 주사는 병원에서 반나절 가량 수액 맞는 것처럼 맞기도 하고 집에서 자가 주사로 맞는 경우도 있다. 주사를 맞는 주기도 한두 달에 한 번씩 맞는 것도 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맞기도 한다. 요즘에는 특히 어린 크론병 환자들의 경우 주사제 치료를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추세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크론병 환자의 부모들은 주사제 치료는 최대한 미루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주사제 치료를 시작하면 평생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아야 하고 의료 보험 혜택이 있기는 하지만 비용도 꽤 든다. 번거로움과 비용의 문제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새로운 약에 적응하기 까지 부작용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다. 주사제에 잘 적응이 된다고 하더라도 몇 년이 지나면 갑자기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가능하면 주사제로 넘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계속되는 음식 조절이 지칠 지경인데 민지는 대장 내시경을 또 다시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다시 처음처럼 경장영양제 엘리멘탈과 흰 죽만 먹는 음식 조절을 다시 시작했다. 1학기 기말고사 기간에도 엘리멘탈만 먹는 음식 조절을 했었는데 2학기 중간고사 기간에도 또다시 엘리멘탈만 먹는 음식 조절을 하게 되어버렸다. 이번에는 경장영양식에서 일반식으로 넘어갈 때 조심조심 천천히 넘어가기로 굳은 결심을 했다. 죽을 싫어하지만 흰 죽에 간장 섞어서 먹고, 그다음에는 흰 죽에 살코기 조금 넣어 일주일 먹고, 야채 하나씩 넣어 또 일주일 씩 적응하며 먹고. 마치 아기들이 이유식 먹을 때 하나씩 하나씩 적응시키듯이 먹어보기로.


  신랑에게 선언을 했다. “내가 민지 안쓰러워서 엘리멘탈이랑 흰 죽 아닌 것 먹이려고 하면 나 혼내줘.” 민지가 “고사리 먹고 싶어, 다이제 과자 먹고 싶어, 짜장면 먹고 싶어.” 이것저것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 “우리 내년에는 먹을 수 있게 올해 잘 이겨나가 보자!” 소망을 담아 주문처럼 외쳐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책 - 크론병과 살아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