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크론병 이야기 14
대장 내시경 후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C.Difficile)이라는 균에 감염이 되어 치료가 필요하다는 주치의 소견이 있어서 항생제 치료를 시작했다. C. 디피실 균은 주로 항생제 치료를 장기간 받을 때 이 균의 감염에 취약해 진다고 한다. (연세대 천재희 교수님 블로그 참조 https://blog.naver.com/geniushee/221723093838 ) 면역억제제를 먹고 있는 크론병 환자들 또한 여러 가지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에 취약하여 C.Difficile 감염은 질병 경과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항생제로 인한 감염을 항생제로 치료한다는 것이 좀 아이러니 하긴 했지만 치료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컸지만 입원 둘째 날이던 월요일부터 수액으로 항생제를 투약받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도 입맛이 없어서 식사를 많이 하지 못하긴 했지만 입원 내내 수액을 맞고 있었으니 그거 때문에 배가 고프지 않아서 먹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수요일에 퇴원 하면서 알약으로 된 항생제를 처방 받고 하루에 3번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항생제를 먹었다. 목요일 점심까지도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점심 먹은 이후로 서서히 컨디션이 안 좋아 지더니 보통은 자고 일어나면 개운해 했었는데 자고 일어나도 속이 매스꺼워서 저녁도 먹지 못했다. 밤 10시쯤에 그래도 항생제를 먹어야 하니 뭐라도 조금이라도 먹이고 약을 먹이려고 했지만 토할 것 같아서 물도 못 먹겠다고 했다. 의사인 동생에게 급히 전화해서 물어 봤는데 일단 도저히 못 먹겠으면 항생제도 먹이지 말라고 했다. 동생이 민지가 먹는 항생제의 이름을 물어 투약 설명서를 찾아 보내 줬더니 항생제 부작용일 수도 있다고 했다.
다음 날 새벽에 토할 것 같다고 화장실로 달려갔지만 전 날 점심 이후로 먹은 것이 없어 약간 누런 위액만 나왔다. 오전 8시 쯤 민지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보여서 아빠에게 업혀서 다니던 병원의 응급실로 달려갔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몇 발자국도 걷기 힘들어 했다. 응급실에 도착하여 수요일까지 입원해서 대장내시경과 MRI 검사를 받았고 퇴원해서 항생제를 먹는 중 오심으로 물도 못 마셨다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설명했다. 일단 엑스레이를 찍고 피검사 하면서 수액을 좀 맞아보자고 했다.
어제 밤엔 엄마랑 종알종알 대화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민지가 단어 하나 말하기도 힘들어 해서 말 한마디 못시키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수액을 맞으면서 푹 잠을 자니 빨리 회복이 되긴 했다. 2~3시간 자고 나니 민지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옆 침대에는 민지가 자는 사이에 7살 쯤 된 남자아이가 배가 아파서 응급실에 온 듯 했다. 그 아이가 수액 바늘 꽂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며 울면서 “엄마가 주사 안 놓는다고 했잖아! 엄마가 사기 쳤어.”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상태가 좋아진 민지와 민지 옆에서 꾸벅 꾸벅 졸다 일어난 나는 서로 키득거리며 “저 옆에 아기 안쓰러운데 너무 귀엽다”라고 속닥거릴 수 있었다.
1시 쯤 추가로 했던 피 검사 결과 탈수 증상도 많이 좋아졌으니 이제 퇴원해도 괜찮다고 하셔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응급실에 오길 정말 다행이었다. 머뭇거리고 있었으면 아직도 집에서 힘들어하고 있었을 텐데 적절한 시기에 (조금 더 일찍 24일 밤에라도 왔어야 했나 싶긴 했지만) 와서 치료를 받아서 다행이었다.
집에 올 때는 아빠한테 업히진 않았지만 여전히 다리에 힘이 없어서 옆에서 부축해서 집에 들어왔다. 어제 심했던 오심은 항생제를 안 먹고 수액을 맞은 후에 거의 없어졌다. 대신 다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 몸살 기운이 온전히 다리에 몰린 느낌이라고 했다. 다리에 따뜻한 핫팩을 대주고 오른 다리, 왼 다리 한쪽씩 엄마와 아빠가 맡아서 주물러 주었다.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승현이도 누나가 걱정이 되었는지 누나 방을 들락날락하며 누나를 보고 가곤 했다. 집에 와서도 한숨 낮잠을 푹 자고 아프던 다리도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항생제로 인해 생긴 균인 디피실 균을 항생제로 치료를 한다고 할 때 의사선생님께 한번 만 더 물어 볼걸. ‘지금 항생제 먹고 치료를 하는 것이 맞나요?’ 하고. 찜찜한 상태로 그냥 먹이지 말고 한 번 더 물어 볼걸. 면역억제제를 복용 중인 민지에게는 항생제가 더 치명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약에는 한두 가지 부작용들이 의레 적혀 있고 자세히 보지 않았었는데 직접 겪어 보니 약을 먹을 때도 하나하나의 부작용을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감기 걸리면 항생제 처방 많이 받았던 것들까지도 모두 후회가 되던 2020년 크리스마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