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학엄마 May 16. 2021

주사 치료 직전에서 - 크론병과 살아가기

딸의 크론병 이야기 23


  “어머님, 제가 전화 드리고 싶었잖아요.” 피검사, 칼프로텍틴 (대변 검사) 수치를 들으러 어제 병원에 갔었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교수님께서 이리 말하시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4월 말에 민지는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를 봤다. 코로나로 인해 영어, 수학 두 과목밖에 안 보긴 했지만 4월 한 달 동안 정말 최선을 다 해서 공부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먹는 것도 마음껏 못 먹는 상황에서 엘리멘탈과 엔커버 (크론 환자들이 많이 먹는 경장영양제)로 없는 기력 짜내서 공부하는 모습이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본인은 더 했겠지만. 4월 말 시험을 볼 때쯤부터 대변의 횟수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횟수도 7~8번 이상 가고 심지어 자다가 밤에 화장실 가는 일도 자주 생겼다. 밤에 자다가 화장실 가는 것은 좋은 징후는 아니라고 들었기에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시험이 끝나면 괜찮겠지 하며 시험 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상황은 비슷해서 한 달 정도 앞당겨서 진료를 보러 갔었다.


  “이제는 치료를 바꿔야 할 것 같아요.” 시험 기간 동안의 일들을 교수님께 말씀 드리니 주사 치료로 넘어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하셨다. 주사 치료를 위해서는 대변검사와 결핵검사 등을 포함한 피검사가 필요해서 그 다음 날 대변도 제출하고 피도 보통 때는 2~3 통 뽑는데 8통이나 뽑았다. 보통 피검사 결과는 2~3시간 정도 후이면 나오는데 대변검사는 일주일 정도 소요되기에 그 다음 주 금요일에 진료 예약을 해두었는데 어제가 그 날이었던 것이다. 나에게 일주일이 참 길었다. 이제는 주사제 치료를 해야 하는구나. 그래 그 동안 민지가 너무 고생이 많았으니 주사 치료 하면 훨씬 편해질 수 있을 거야. 작년에 좀 더 음식을 조심했어야 했나. 영양제 먹는 걸 좀 더 빨리 먹이기 시작할 걸. 진료 전 날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느라 잠이 오지 않았었다.

 교수님께서 전화 드리고 싶었다는 것에 대한 답변을 듣기까지의 잠시 동안 ‘아. 수치가 많이 안 좋아졌구나. 바로 입원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하며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많이 좋아졌어요. 칼프로텍틴 수치가 516이고 혈액 검사 결과들도 다 좋아요.”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교수님께서도 민지가 지난 일 년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를 아시기에 나의 눈물을 보시며 눈가가 촉촉해 지셨다. 칼프로텍틴 수치가 4월초에 1287이었는데 어제 검사에는 516이면 한 달 사이에 절반이 뚝 떨어진 것이다. 시험 공부하면서 힘들었던 시기였는데도 수치가 떨어진 것은 정말 기적과도 같았다.


  크론병에서 주사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상태가 좋아졌다고 해서 바로 중단할  있는 치료가 아니다. 필요하다면 맞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으러 가야하고 (물론 자가로 집에서 맞는 주사도 있다.) 주사제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의료보험 요건도 까다롭다. 특히 몸이 좋아져서 중단한 후에 다시  좋아져서 주사를 시작할 때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어렵다고도 한다. 지난 일주일 동안 이제는 주사치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대변검사 수치가  좋아져서  자리 수로 들어와 주길 간절히 기도 했었다.


  두 달 후 민지 기말 고사 끝나는 시점에 맞춰서 피검사, 대변검사를 예약하고 바로 민지한테 전화를 했다. 민지에게 검사 결과를 이야기 해 주니 “엄마 그럼 주사제 안 해도 되는 거야?” 지난 주 진료 후에 주사치료 빨리 해서 6월 기말고사 준비할 때는 좀 덜 고생했으면 좋겠다고 했던 민지도 기뻐했다. “근데 왜 좋아진 거지?” 하면서. 참 이래서 크론은 쉽지가 않은 것 같다. 컨디션이 좋은데 염증 수치들은 생각보다 떨어지지 않을 때도 있고 컨디션은 거의 최악이었는데도 염증 수치는 또 좋을 때도 있고. 예측하기 어려운 크론병이다. 그래도 진단 받은 후로 가장 낮은 대변 수치를 받으니 민지도 나도 기분이 아주 좋았다.


  수치가 많이 내려가긴 했지만 아직 대변수치도 더 내려가야 하고 (일반인들은 칼프로텍틴 수치가 50 이하이면 정상이지만 크론병인 경우 250이하이면 그래도 양호한 편인 것으로 본다.) 주 증상인 변이 무른 현상, 무력감은 아직 남아 있으니 더 관리를 해야 한다. 아니 평생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관해기가 오더라도. 여전히 나는 무슨 음식을 해줘야 할지 매일 매일 고민할 것이고 민지는 매일 매일 영양제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약도 챙겨 먹으면서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한다. 앞으로 지칠 일들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좌절할 일들도 있겠지만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지치면 잠시 쉬어가며 또 하루를 살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벌써 1년-크론병과 살아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