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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학엄마 May 29. 2021

수행평가를 지켜라. - 크론병과 살아가기

딸의 크론병 이야기 24

  민지는 고등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중간고사를 치렀다. 다행히도 민지네 학교는 영어와 수학 두 과목을 이틀에 걸쳐서 한 과목씩 봤다. 다른 학교들은 6과목가량을 보는데 비하면 많이 부담 없긴 했지만 영어와 수학 모두 주요 과목이다 보니 그리고 고등학교 첫 시험이다 보니 많이 긴장도 하고 준비도 열심히 했다. 본인은 의외로 긴장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몸은 긴장을 많이 했었는지 시험이 있던 4월은 내내 엘리멘탈, 엔커버, 죽, 가벼운 음식들 - 계란국, 계란말이, 닭고기 등 을 먹었다. 먹는 양도 확 줄어서 몸무게도 2킬로가량 빠져버렸다. 야금야금 몸무게가 늘어나도 시원치 않을 판에 몸무게가 빠져버리니 기운이 없었다.


  시험은 다행히도 준비한 만큼 잘 치렀다. 덕분에 자신감도 많이 생겼다. 고등학교라는 막연히 시험이 엄청나게 어려울 것이고 점수도 엄청난 점수를 맞을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몸 컨디션은 바닥을 찍었다. 다행히도 5월 초 컨디션이 바닥일 때의 칼프로텍틴 수치가 516으로 좋아졌기에 다행이었지 아마 수치까지 안 좋았다면 지금쯤 주사제 치료를 시작했을 것이다. (물론 주사 치료가 필요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만 민지는 아직은...) 수치는 좋게 나왔지만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5월 초 꿀 같은 일주일의 재량 휴업일에 민지는 자꾸 체해서 힘든 2주가량을 보냈다. 4월 내내 경장영양제로 버틴 터라 음식이 들어가니 소화를 시켜내지 못했던 것 같다.


  수행평가가 4개나 있어서 학교에 빠지면 안 된다고 하던 그 전날, 민지는 심하게 체했다. 밤 12시가 되도록 그윽 그윽 트림을 해댔고 올라오는 트림 때문에 쉽게 잠들지도 못했다. 결국 병원에 갔다가 오후에 학교에 등교하기로 하고 다니던 대학병원에 당일 진료를 보러 갔다. "단순히 체한 것일 수도 있지만 혹시나 좁아진 곳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CT를 한번 찍어보면 좋겠어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 불안해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확인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테니. CT를 찍으려면 4시간가량 금식을 해야 하는데 아침을 못 먹고 나온 민지가 배가 너무 고파서 어지럽다 하여 진료 보기 바로 직전에 엔커버를 한 포 먹어버린 것이다. 엔커버만 먹지 않았어도 바로 CT 보고 갈 수 있는 건데.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었다.  집에서 좀 쉬었다가 오후 3시에 CT를 찍고 마지막 시간에는 조별 수행평가가 있어서 꼭 가야 한다고 해서 학교에 가는 것으로 스케줄을 맞췄다.


  혹시나 해서 CT 예약 시간은 3시지만 좀 일찍 2시 반에 병원에 도착했다. 일단 접수할 때부터 문제가 좀 발생했다. CT 찍으려면 보호자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고 소아과로 다시 가서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하셨다. 그래 이런 일이 있을까 봐서 우리가 일찍 온 것이니 다행이다 하면서 소아과로 올라가 동의서를 받아 내려왔다. 옷을 갈아입고 CT실 앞에서 굵은 주삿바늘을 얇디얇은 민지의 팔에 꽂고 기다렸다. 당일 예약이라 기존에 예약한 사람들 중간중간 비는 시간에 들어가야 하는지라 대기 시간이 좀 길어졌다. 3시 반쯤 드디어 민지의 차례.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했다. 소아과에서 오더 내려진 것이 이상이 있어서 확인이 필요하단다. 전화를 여기저기 하시더니 원무과에서 추가 진료비를 납부하고 오라고 했다. 마음이 급해진다. 4시 5분이 민지 7교시 수업 시작 시간인데 벌써 3시 35분. 학교까지 5분이면 가는 거리기는 하지만 CT 찍는 시간 10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지금 바로 진료비 납부할 테니 다음 사람 들여보내지 말아 주십사 간청을 드리고 뛰어가서 납부하고 왔다.


  3시 45분경 CT 실로 들어가서 사진을 찍고 3시 55분경에 나와서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정문에서 대기 중이던 민지 아빠가 민지를 태우고 학교 앞에 4시 6분에 내려줬다. 다행히 이동 수업하는 시간이라 민지도 교문에서 열심히 뛰어가서 조별 수행평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정말 007 작전을 수행하듯이 학교를 보내고 나도 긴장했는지 집에 오자마자 녹초가 되었다. 바닥에 몸이 닿자마자 잠이 들어 1시간가량을 자고 일어나니 정신이 차려졌다. 다음 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또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다행히도 CT 상 좁아진 소견은 없으시다 하여 처방받은 소화제를 당분간 먹어보기로 했다.


  하루 이틀 정도 죽을 먹다가 죽이 너무 지겨워서 소화가 잘 되는 음식 위주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CT 소견 상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안심이 되었는지 아니면 체한 동안 음식을 줄여서 먹은 것이 좀 도움이 되었는지 다행히 CT 찍은 이후로는 소화가 안되어 끄윽끄윽 하던 트림도 거의 없어졌다. 아마 그다음 날 수행 평가가 4개나 있다는 압박감이 스트레스가 되어 소화가 안되었던 것 같다. 그날 보지 못했던 나머지 수행평가는 그다음 날과 그다음 주에 나눠서 무사히 치렀다.


  다사다난(?) 했던 대면 수업 한 주를 지내고 지난 한 주는 온라인 수업 기간이었다. 아무래도 민지에게는 온라인 수업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편안한 시간이긴 하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소화시키지 못하니 아침에 엘리멘탈 반포, 점심, 간식, 저녁, 엔커버 한포 이렇게 일주일을 먹으니 지난주 보다 컨디션이 조금은 올라왔다. 아직 여전히 빠진 몸무게는 회복은 안 되었으나 이제 슬슬 기말고사 준비를 하는 것을 보면 조금은 힘이 생기고 있는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본다. 기말고사가 끝나는 7월 초까지 힘든 날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 하던 대로 우리 화이팅해 보자! 엄마도 이유식 책 보면서 속도 편안하면서 맛있는 음식 많이 고민해 볼게.


오므라이스
연어 데리야끼 구이
달걀말이 주먹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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