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njunwon Dec 25. 2022

03. 인도에 온 목적은 무엇인가요?

TTC에 적응하는 이야기, 만트라 이야기

인도에서의 TTC를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정리하는 글입니다. 과거이지만 현재형을 사용하고 시간순으로 작성했습니다.




생각보다 바쁘다


하루종일 이어지는 시간표는 생각보다 바빴다. 한달동안 300시간을 채우려면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가만 생각해보면 인도라는 나라에 와서는 무언가 늘어짐이 있을꺼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온 탓도 있을 것이다.

철학 선생님께서는 수련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태도 중 하나로 수련 전에 자기 몸을 깨끗이 하여 경건하게 임해야 한다고 하셨고 나는 이조차 지키고 싶었다. 나는 매일을 새벽 5:30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차 한잔으로 여유를 내며 6:30 수업에 들어갔다. 운동 전에 샤워하는 일은 어색하지만 운동이 아닌 수련으로 대하면 또 당연한 일로 느껴진다.

일주일이 지나면서 그 시간표에 적응되고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첫주는 몸과 마음이 분주했다. 10시에 누워 5:30에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이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한다. 이렇게 규칙적인 생활은 제대 후 처음이고 시간표를 정확히 지킨다는 것만으로 무척 건강해 지는 느낌이다.

회사에서의 일정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일정을 수립하고 지켜나가는 것이 주체적일 수 있지만, 정해진 시간표 내에서 움직여야 하는 학생 신분의 구속감이 은근히 편안함을 주었다. 아마도 그동안 생각에 지친 내가 생각할 필요없이 따라가면 되기 때문인 것 같다.

아사나와 이론 수업이 하루종일 계속된다



만트라를 부르다

매일 아침 만트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선생님이 한구절하면 따라 부르는 식이다. 힌디어로 부르고 어학수업을 따로 들은게 아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어설픈 발음으로 어물어물 흉내내기 마련이다. 첫날에는 이런걸 왜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가득했는데 익숙해지면서 만트라가 주는 편안함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후에 선생님께서 단어 하나하나의 해석과 의미들을 가르쳐 주셨는데, 인도의 다양한 신들을 찬양하고 존경을 표하는 내용이어서 유일신을 믿는 사람들은 만트라를 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이렇게 내가 어떤 신을 경배한다는 것이 불편해서 ‘마음의 평화를 주는 구전민요’ 정도로 생각하며 부르기로 했다.

파탄잘리 만트라, 구루 만트라, 가네샤 만트라 등등 그 종류도 많다. 또한 구전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부르는 사람에 따라 (큰 틀은 비슷하나) 음이나 박자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음이 중요한 것보다는 부르는 이 또는 듣는 이의 감정이 중요할 것이다. 선생님이 부르는 것을 가만히 듣다보면 아리랑이 생각나곤 한다. 부르는 사람들의 간절하고 서럽고 경건하고 한스러운 마음은 인도의 옛분들이나 한국의 옛분들이나 마찬가지로, 인간이 가진 어쩔 수 없는 결핍에 대한 위로나 바람이 담긴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리랑이 우리에게 익숙한 멜로디인 것처럼 만트라도 매일 듣고 부르다보니 익숙해진다. 편안하다. 부르고 있자니 이제 제법 요기가 된 느낌도 받는다. 함께 배우는 사람들도 골목을 걸으며 빨래를 널으며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아마도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올리는 음, 내려가는 음, 길게 늘려야 하는 음, 끊어가는 박자. 이렇게 연습했다지


인도에 온 목적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
선생님은 인도에 온 목적이 무어세요? 무엇을 얻으려고 여기까지 오셨어요?


점심을 먹는 도중에 질문을 받았다. 함께 수련온 사람들은 대부분 요가나 필라테스 강사이거나 준비하는 사람이고 회사원은 나뿐이다. 게다가 남자는 둘 뿐이고 휴직까지 하고 왔으니 궁금할만하다.


인도행 티켓을 끊은 후 나는 나 스스로에게 몇번이고 질문했다.

무엇을 얻기 위해 거기까지 가는 거냐고.

나에게 자문할 때마다 <나의 아저씨> 마지막 화에서 이선균이 아이유에게 '이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하는 질문이 자꾸 생각나는걸 보면, 어쩌면 나도 편안함에 이르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편안함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 어떤 목적도 두지 않고 결심도 하지 않았다. 목적과 결심을 갖는 순간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들이 필요하고, 그러는 순간 나는 어떠한 편안함에도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받은 질문은 이미 충분히 생각했던 것이라서 나는 빠르고 명확하게 대답했다.


어떤 목적도 없이 왔어요. 아무 생각없이 지내는 것이 목적이에요


질문을 받으며 나는 다시 한번 나의 목적을 상기한다. 나는 아무 목적 없이 지내다 갈 것이며 아무 생각도 없이 지내다 갈 것이다. 요가에 대한 배움이나 인도에서의 경험, 그리고 새로 만나는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충주에서 오신 쌤이 이곳에서 질문을 주셨다. 하지만 그 이후로 대화가 이어지지 못한 상황을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대답이 어쩌면 무성의한 대답으로 들렸을 수 있겠다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02. 요가 첫걸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