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 스며든 또 다른 우주의 조각
오래된 질문
이제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어느 날 한 칼럼과 한 권의 책을 통해 위안을 얻었다. ‘저 공기나 나무도 근본적으로 따지면 나와 같은 지구의 에너지’라는 그 말이 내게 위안이 되었다. 나는 죽으면 영혼과 함께 사라지는 게 아니라 돌아가서 우주의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애초에 과학은 사람의 심리적인 요인과 떨어진 논리의 세계라고 생각해왔기에 내가 몰랐던 이야기가 더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 쌩뚱맞게 과학의 '과'자도 잘 모르는 내가 최근 위로를 받은 책은 미치오 카쿠의 '평행우주'.
평행우주론이란 가능한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그만큼에 해당하는 갯수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이론.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서 결정을 내려야할 때 그 선택에 대한 경우의 수만큼 우주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드 '닥터 후' 속 시공간을 넘나들지만 평행우주로는 갈 수 없었던 닥터와 로즈가 떠오르기도 했고.. 내가 자면서 꾸는 꿈들은 어쩌면 다른 우주 속의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물론 평행우주론은 수많은 이론들 중 하나일 뿐이니 궤변이고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우주가 팽창하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많은 가능성을 담아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다른 곳에 다른 선택으로 생긴 무한한 우주가 있다면 내 선택의 옳고 그름을 따질 근거나 베이스가 없을테니 지금의 나를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야지.
그런데, 다른 우주의 나는 지금 잘 지내고 있니?
- 2010년의 어느 날
지금의 응답
2010년의 나야. 네가 남긴 마지막 문장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아. "다른 우주의 나는 지금 잘 지내고 있니?" 그 물음을 따라가다 보면 끝이 없는 복도로 들어서는 기분이 들어.
그 시절의 너는 ‘평행우주’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품에 안고 다녔지. 통학버스 창밖은 늘 똑같았지만, 책 속 우주는 매번 다른 얼굴로 열렸어.
그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던 것 같아. 좁고 답답한 삶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었기에, 세계의 넓음을 증명해 줄 무언가를 찾았던 거겠지. 그래서 다른 차원의 문을 기다렸고, 그 바람은 평행우주라는 상상으로, 푸른 박스의 형상으로, 별자리의 은빛 흔적으로 드러나곤 했어.
만약 수많은 우주가 있다면, 그 속의 나는 서로를 스쳐 지나가면서도 알아보지 못할 거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다른 기억과 다른 선택이 이미 우리를 갈라놓았을 테니까.
그래서 가끔은 묻는다. 같은 '나'라는 이름 아래 살아도 괜찮은 걸까, 아니면 전혀 다른 인생으로 흩어져 있는 걸까.
이런 상상은 이상하게도 현실의 꿈과 닮아 있어. 밤마다 떠오르는 낯선 장면들이 다른 우주의 내가 흘려놓은 파편이라면 어떨까. 그쪽에서 웃고 있던 내가 잠깐 이쪽의 꿈을 채워놓은 거라면.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그토록 설명하기 어려운 그리움이 남는 걸지도 몰라.
그때 네가 기대 걸었던 평행우주는, 지금의 나에게 먼 이론이 아니라 가까운 감각처럼 다가와. 가지 못한 길, 하지 못한 말, 놓쳐버린 사람들. 그 모든 흔적이 여전히 현재를 흔들면서 또 다른 가능성을 환기시켜. 마치 내 안쪽에 겹겹이 다른 우주가 살아 있는 것처럼.
그리고 네가 던진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이제 이렇게 답하고 싶어.
"다른 우주의 나는 아마도 잘 지내고 있을 거야.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우주의 나 역시 여전히 잘 지내보려고 애쓰고 있다는 거지. 그러니 걱정하지 마. 우리가 꿈꾸던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는 지금 여기에서 이미 이어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