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싶지만 끝내 묶여 있는 나의 도시
추석을 앞두고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20대 시절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함께 했던 친구였다. 대학 시절부터 사회인이 되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 1년에 한두 번은 꼭 얼굴을 보던 사이였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 살았지만 지금은 부산으로 내려가 있다고 했다.
"서울은 숨 막혀. 늘 사람들에 낑겨 사는 게 싫더라. 연봉이 줄더라도 고향이 차라리 마음 편해."
짧은 말이었지만 오래 남았다. 나는 여전히 서울에 있다. 수없이 떠나고 싶다고 말해왔지만, 정작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떠나고 싶은 마음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이 도시를 너무 사랑했기에 생겨난 절망의 다른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서울은 나의 고향이다. 태어나고 자라며 모든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떠나고 싶다고 수없이 말했지만, 결국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 도시는 단순한 생활 기반을 넘어, 나의 성장과 기억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어릴 적, 우리 집 마당은 작았지만 뒤편에는 산이 있었다. 내게 그곳은 가장 넓은 정원이었다. 아빠와 함께 토끼에게 먹일 풀을 따러 그 산에 오르곤 했다. 높지 않은 동산이었지만, 내려오는 길에 한강이 내려다보였다. 어린 눈에 한강은 세상에서 가장 큰 강이었고, 강물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알 수 없어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지금도 한강은 같은 자리에 흐르지만, 뒷산 아래에는 대단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회색의 외벽 아래에서 문득 흙바닥의 냄새를 맡는다. 거대한 건물들이 어린 시절의 시야를 가로막은 채, 내 여덟 살의 시간은 그곳 지하에 화석처럼 굳어 있다.
청소년기의 서울은 홍대에 묻혀 있다. 미술학원 근처 빵집은 지금 자취를 감췄다.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전혀 다른 유행의 프랜차이즈 매장이다. 그 시절, 나는 그 빵집의 슈크림빵으로 저녁을 대신했지만, 그 흔적이라곤 남지 않은 곳에서 나는 더 이상 청소년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없다.
열여덟의 나는 입시에 매달리던 학생이었지만, 동시에 무질서한 밤의 숨결을 갈망했다. 그 갈망으로 때로는 학원을 빼먹고 지하 공연장으로 내려가 기타 소리에 몸을 기댔다. 새벽까지 이어지던 홍대 놀이터의 웃음은 바람처럼 흩어졌지만, 그 공기 속에서만 맛볼 수 있던 자유가 있었다. 서울은 그렇게 내 청소년기의 흔적을 흩뜨려 놓으면서도,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들을 내 안에 화석처럼 남겨 두었다.
이곳에서의 청춘은 언제나 모순적이었다. 스물이 되면서 처음으로 이 도시를 넓게 바라보게 되었지만, 자유로움만큼 불안도 따라왔다. 강의와 아르바이트, 지하철역마다 흘러나오던 음악, 친구들과의 짧은 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사라졌다. 꿈을 꾸는 일과 현실을 버텨내는 일이 동시에 밀려오던 시절, 언젠가부터 나는 이 도시를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견뎌야 하는 세계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지금도 그 긴장은 이어지고 있다. 일의 경계는 늘 모호하고, 프로젝트마다 생존이 달라진다. 메신저 창에는 마감 일정과 수정 요청이 겹쳐 뜨고, 작업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의뢰가 도착한다. 멈추지 않는 이 흐름 속에서 나는 여전히 이곳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고 있다.
이 도시는 결국 나를 시험하고 긴장을 강요하지만, 그 압박 속에서 나는 버텨내며 다시 의지를 다진다. 서울은 그렇게 내 존재를 조금씩 단단하게 벼려온 곳이다.
때때로 정신없이 달려온 나를 가을날의 정동길 풍경이 잠시 붙잡는다. 황금빛 은행잎은 발끝을 덮고, 낙산공원 성곽길의 노을은 하루의 무게를 녹여낸다. 녹슨 철골 사이로 고요히 빛나는 한강의 물결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도시의 모든 소리를 삼킨다.
이 도시엔 여전히 변하지 않은 구석들이 있다. 오래된 골목의 벽돌 담장, 계절마다 잎을 틔우는 가로수, 세월에 닳은 간판 하나까지. 그런 풍경 앞에 서면 마음이 묘하게 느슨해지고, 여기가 내가 나고 자란 도시라는 사실이 잠시나마 따뜻하게 스며든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현실은 낭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감 알림이 울리기 무섭게 세금 납부 안내 문자가 도착하고, 휴대폰은 끊임없이 울린다. 마감, 수정, 세금... 이 알림들이 노을빛 위로 겹쳐 들린다. 이 낭만과 압박이 동시에 스며드는 순간, 나는 이 모순을 온몸으로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나는 이 도시를 미워하면서도 결국 기대고 만다. 서울은 끊임없이 불편함을 요구하지만, 나는 그 불편함 속에서 가장 끈질긴 나의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왔다. 이 모든 모순에도 불구하고 내가 떠날 수 없는 까닭은, 이곳이 나를 단단히 묶어둔 뿌리이자 나의 정체성을 벼려낸 장소이기 때문이다.
친구의 "숨 막혀"라는 말과 대비해 문득 생각한다. 오십 대의 나는 이 도시를 어떻게 기억할까. 빵집의 달콤한 슈크림과, 사라진 거리의 웃음이 한 문장 안에서 함께 떠오를까. 아니면 둘 다 사라지고 없는 풍경 속에서 나는 서울이라는 단어만 남겨두게 될까.
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쩐지 나는 안다. 불편함과 낭만이 뒤엉킨 이 도시가, 나를 가장 솔직하게 시험하고, 동시에 가장 끈질기게 살아 있게 한다는 것을. 그래서 이 모순을 끝내 떠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나를 세워가고 있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