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의 또 다른 이름

성장통이라는 말이 그래서 생긴 걸까

by YUNIKE


나는 늘 조금씩 성장한다.

지나고 보니 ‘내가 성장했네? 이전과 다르게 생각/행동하고 있네’ 문득 깨달았던 적도 있고, ‘아 이렇게 내가 지금 성장하는 거겠구나’ 느끼며 받아들인 적도 있다.


성장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의미’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이 말은 성장 자체가 목표라는 뜻과는 다르다. (물론 성장을 지향하머 살고 있는 것은 맞다.) 조금 더 정확한 의미를 풀어 보자면, 인생 그 자체가 각 개인의 성장 이야기라는 생각이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성장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건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지금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자신을 아끼기에 더 성장할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고 싶은 거다.



성장은 때때로 우리를 아프게 한다.


성장은 여러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건 괴로움일 수도, 허망함일 수도, 지루함일 수도, 초연함일 수도, 슬픔일 수도 있다.


달콤한 성장도 분명 있지만, 씁쓸한 맛을 보여주는 성장들도 있다.


‘사람을 이해하는’ 성장이 주로 후자에 해당되는 것 같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이해받았고 온전히 있는 그대로 수용되었듯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대해주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생겨났다.


생각해보면 ‘온전히’ 누군가를 수용해주는 건 연인끼리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회사에서 좋지 않은 시선이나 소문에 휩싸인 사람을 그저 그 사람 자체만으로 보아 주는 것도 ‘온전히’ 인식해주는 것이다.


내가 보고 겪은 것이 아니기에, 그것만 듣고 그 사람을 그렇게 간주해버리는 것만큼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일은 없다. 말 한 마디로 속아버린 사람과 전혀 다르지가 않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마음을 헤아린다는 건 ‘그 사람 마음에 들어가보는 것’이다. 역지사지를 해보는 것.


나는 언쟁가부터 역지사지 내지 공감이라는 게 참 쉽지 않다 생각되었는데, 요즘은 내 일상에 그 기능이 자주 등장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 사람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타인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과정이 나의 행동과 ‘동시에’ 또는 행동 ‘이후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빈도가 높아졌다는 점에서 내게는 의미있는 성장이다.



이해하는 만큼 아프다.


그런데, 그만큼 아프다.

이해하는 만큼 그 사람의 마음 상태가 짐작되고, 또 그 마음에 공감하다 보면 아프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뒷모습’이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공감은 사람 자체에 대한 인류애적 사랑을 바탕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눈물이 많아졌다.


물론 상황적으로 마음이 조금 힘이 빠진 상태라든가, 나의 감수성이 예민해진 상태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사람을 아끼고,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뾰족한 사람에게는 나 역시 부드럽게만 대하지 못할 때는 마음이 편치 않다.)


그게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 아닐까. 가장 취약하면서도 강하고 부드러운 상태.



성숙의 또 다른 이름은 ‘눈물’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깨우침은 꽤나 자주 눈물과 함께 왔던 것 같다.


감사했던 기억, 고마웠던 기억, 소중했던 기억.

본질적인 감정을 추리고 나니 이 세 가지이다.


뒤늦게 저 감정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눈물‘을 흘린다.


아마 우리는 스스로 깨닫고 있지 못할 때조차도 감사함, 고마움, 소중함과 함께 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글을 찬찬히 이 문장까지 다 읽어준 분들께 감사하다.


그리고 지금 마음에 위로가 필요한 분들께 이 글이 꼭 닿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의지하며 사는 생명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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