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끊이지 않는 우리.
빨갛고 샛노란 단풍나무를 둘러싸고 곳곳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생겼다. 가을과 겨울이 함께 온 지금이다. 만나기만 해도 즐거운 사람과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우리는 늘 만나는 장소에서 만났다. 익숙한 듯 하루 전날 미리 찾아둔 카페를 향해 걷는다. 시간이 너무 소중한 주부들이기에 가장 일찍 오픈하는 카페를 찾았다. 커피가 맛있는 곳인지 작디작은 공간에 벌써 테이블의 반 이상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나는 따뜻한 라테, 그녀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서로의 근황도 너무 궁금하지만 먹을 게 나오면 일단은 먹고 봐야 하는 둘의 공통된 성향 탓에 조용한 침묵만 흐를 뿐이었다. “커피 맛있는데?” 역시 우리의 대화는 먹는 것으로 시작하는구나. 웃음이 터졌다.
만나면 수다 떠느라 바쁜 두 사람이기에 그 흔한 사진 한 장도 같이 찍은 게 몇 장 되지 않는다. 이번엔 꼭 남겨볼 거라 다짐하며 어색한 손으로 휴대폰 카메라를 켠다. 익숙지 않은 그녀 또한 어정쩡한 모습으로 자세를 잡는다. 1분 지났을까. 역시나 우리의 시간에 셀카타임은 포함되지 않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만나면 즐거운 건 이해가 가는데 혼자서 하기 힘든 이야기를 힘들지 않게 할 수 있는 건 대체 무엇 때문일까? 그녀가 딱 그랬다. 내 근황에 대해(대부분은 그녀도 이미 알고 있음)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에너지가 생기는 기분까지 들었다.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힘이란 게 이런 걸까? 갑자기 심오해졌다.
우리의 배꼽시계는 늘 항상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울린다. 아주 자연스레 카페에서 일어나 역시나 미리 찾아뒀던 식당으로 향했다. 그녀와 나는 다이어트를 동시에 시작해서 현재진행 중이기에 샐러드 포케를 먹기로 결정. 메뉴판을 보자 한숨이 나왔지만 그마저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너무 배가 고팠기에. 그녀가 말했다. “그래도 네 덕분에 점심이라도 건강하게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참 예쁘게도 말해주는 그녀에게 나는 대답했다. “배고파…” 밥을 싫어하는 그녀는 밥을 제외한 모든 걸 천천히 다 먹었고 다이어트 중이라 소스를 따로 받아온 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을 만큼 깨끗이 다 먹었다. 나를 안쓰럽게 보던 그녀가 살며시 내밀었다. “이거라도 먹어. “ 작디작은 민트캔디 두 알이 이렇게나 반가운 건 처음이었다.
오늘 둘 다 운동을 못 가고 만난 것이기에 최소한 만 보 이상은 걸어보자 다짐했다. 점심식사 후 열심히 여기저기 구경하다 보니 이게 뭐지? 겨우 6000보? 제자리 걸음이라도 계속 걷자는 진심 없는 그녀의 말에, 지하도를 건너면서 계속 엘리베이터를 찾는 내 모습에 그저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이러려고 만나는 거야.” 집에 가기 전 크리스마스트리를 구경하기 위해 백화점으로 향했다. 저 멀리 엄청난 크기의 트리가 예쁘게 꾸며져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우와!!!” 그때 내 눈에는 트리보다 약간 앞쪽에 있던 빵들이 먼저 보였다. “우와!!! 맛있겠다.” 식단을 너무 열심히 했더니 이제는 크리스마스트리보다 빵에 더 설레어하는구나.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에이, 그래도 우리가 좋아하는 초코빵은 없네! 맛없겠네!”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한 5종류 본 거 같아….”
그녀와의 만남에 언제부터인가 마지막은 늘 탄산수로 끝이 난다. 다이어트는 늘 진행 중인 데다가 많이 걸으니 탄산은 마시고 싶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아무 맛도 안나는 탄산수. 오늘도 역시 한 병씩 들고 계산하고 나오는데 디저트 팝업스토어가 보였다. 마시멜로 쿠키라는데 서로가 먹지 못하게 말리면서도 쿠키이름은 왜 기억하고 있었는지…. 내가 “초코크런치”라고 말했더니 그녀는 “초코나무숲”이라고 대답한다. ‘이게 무슨 말이지?’ 하고 생각하는 사이 서로 자기가 먹고 싶은 쿠키 이름을 봐뒀다는 사실에 웃음이 또다시 터졌다. ”너 나 먼저 집에 보내고 쿠키 다시 사러 가면 안 돼.” 그녀는 그렇게 쿠키 대신 초콜릿을 샀다고 한다.
앞에 앉았던 사람이 데워놓은 카페 의자, 소스까지 다 먹어치운 샐러드볼, 짧은 오르막길에 거친 숨소리, 엄청나게 큰 리본 머리핀, 초콜릿쿠키, 닭가슴살 소시지 등 오늘 그녀와 나를 실없이 웃게 한 것들은 너무나도 소소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소하고도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에 에너지를 받고 활력을 얻는다. 그녀의 웃음에 내 웃음을 보태서 말이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었다. 그때 샛노란 단풍잎이 가득 달려있는 커다란 은행나무 길이 눈에 들어왔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느끼는 가을의 흔적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그것들이 드디어 내 눈과 마음에도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오늘은 모든 게 행복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