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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ngry Traveller Oct 03. 2017

베트남의 추석은 어린이날

베트남에서 맞이한 3번째 추석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날씨가 뭐냐고 물을때마나 난 늘 "추석 날씨"라고 답한다. 하늘이 맑고 높으면서 어딘가 모르게 설렘이 깃든 그런, 한국 특유의 추석 날씨가 좋다고. 하노이의 날씨는 여전히 30도를 웃돌고 있지만 이상하게 이곳에서도 추석의 따스한 햇살이 느껴지는 듯하고 그래서 색동옷을 입고 동네를 돌아다녔던 어린 시절의 그 기억들이 눈 앞을 아른거리게 해준다. 추석만의 그 느낌에 간혹 가슴이 설레기까지 한다. 금번에 베트남에서 추석을 보내면 올해로 베트남에서 맞이하는 추석이 벌써 3번째. 베트남에서 홀로 보내는 추석은 늘 허전하지만 거리로 나서면 베트남만의 추석을 볼 수 있어서 위안이 되기도 한다. 유난히 휴일이 긴 올해의 한국 추석 때문인지 올해는 조금 더 허전한 느낌이라 문득문득 솔잎 향기가 나는 푹신한 초록색 깨송편을 한 입 깨물고 싶어 지는 요즘이다.  

베트남 하노이의 추석 시장

아쉽게도 베트남의 추석은 공휴일이 아니다. 다만 베트남의 설날은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거의 2-3주를 쉰다. 그러니 추석 때에 따로 휴일이 없어도 크게 아쉬움이 없는지도 모른다. 한 번에 오래 쉬거나 두 번에 나눠 쉬거나의 문제인 것 같다. 게다가 베트남에서 추석은 '어린이날'로도 인식된다. 농경사회로부터 전해진 전통으로 농사짓느라 아이들을 신경 써주지 못했던 부모들이 추석이 오기 전에 추수를 마치고 미안한 한가한 틈을 타 아이들을 위해 추석을 보내게 되면서 베트남의 추석은 거의 어린이날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비록 공휴일은 아니지만 추석 문화는 여전히 베트남 사회에서 중요한 날로 여겨지고 있어 다행히 베트남에서도 추석 몇 주 전부터 추석의 기운을 받을 수 있다. 거리에서는 추석 때 선물로 주고받는 월병을 파는 부스가 생겨나고 시장에서는 추석 때 아이들이 가지고 놀 장난감들을 팔고 추석 때만 볼 수 있는 사자춤의 향연이 거리에서도 종종 목격되기 때문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추석을 어떻게 즐길까?

베트남에서는 추석을 기념하기 위해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비롯하여 아이들은 잉어 모양의 등불을 들고 다니며 사자춤 퍼레이드를 구경하는 등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진다.  


조상을 위한 제사
베트남의 제삿상

우리나라처럼 베트남에서도 추석이 되면 제사를 지낸다. 보통, 제사는 보통 추석날의 밤에 집이나 상가 혹은 기관의 앞마당에서 지낸다. 월병이나 과일 그리고 다양한 스낵 등을 상 위에 놓고 절을 하며 제사를 지낸 후 보름달을 보면서 온 가족이 모여 늦은 저녁을 먹는다.

조상신을 위해 준비한 종이 옷과 신발 모형

베트남의 제사상은 조상신에게 바치는 종이로 만든 모자, 겉옷과 신발 모형을 음식과 함께 놓은 후 이 종이모형들은 마당에 태워버리며 기도를 드리는데 이 종이 모형의 옷고 신발들은 조상신이 제사 후에 새로 갈아입을 것들이라고 했다.

간혹 가짜 돈도 함께 태워 조상신에게 용돈도 드린다고 한다. 중요한 점은 이 종이모형의 옷과 돈 등을 끝까지 재가되도록 태워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완전한 재를 만들지 않고 대충 태우다가 말게 되면 조상신이 누더기가 된 옷을 입게 돼도 불에 그을린 표시가 나는 돈을 갖게 되기 때문에 끝까지 고운 재가 될 수 있도록 막대기로 부셔가며 태워야 한다. 제사 후 식사가 다 끝이 나면 이제 어린이들의 놀이를 위해 등불 등의 장난감을 들고 거리를 나가 축제를 즐긴다.


잉어 모양의 등불을 들고 거리로

잉어 모양의 등불을 들고 추석의 저녁거리를 거니는 것은 베트남의 오랜 전통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잉어 귀신이 추석날에 많은 사람을 죽였고 그 이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추석 날 밤에는 잡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후, 현명한 어떤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어 잉어 모양의 등불을 막대기에 달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어 밤길을 걷게 했다고 한다. 그러자 잉어 귀신이 밝은 등불에 겁에 질려 그 후에는 사람들을 죽이지 못해 추석이 되면 사람들은 잉어 등불을 들고 거리를 걸어 다니게 시작했다는 믿기지 않는 전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즘은 베트남 어린이들이 잉어뿐만 아니라 다른 어려 모양의 종이 등불을 들고 북을 치고 가면까지 쓰고 다니면서 다른 한 손에는 월병을 들고 먹으며 논다.

어린이를 위한 날이라 가족단위로 나들이를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고 어린이들의 손에는 장난감이 하나씩 쥐어 있다.

어린이를 위한 행사 또한 곳곳에 펼쳐지고 베트남의 추석은 온전히 어린이들을 위한 날임이 눈에 띈다. 하노이의 주말 차 없는 거리를 진행하는 호안끼엠 주변에서는 어린이들의 운동화 멀리 던지기 등의 게임으로 거리거리마다 뛰어다니는 어린이들을 볼 수 있어 좋다.

하노이의 추석 시장

추석을 위한 특별시장도 열리는데 보면 죄다 어린이들을 위한 선물로 가득 차 있다. 엄마 손에 이끌려 원하는 장난감을 가리키며 고르는 베트남 아이들이 많이 부러웠다. 나 어릴 땐 원하는 장난감을 고른다는 게 부모님들께 너무나 미안한 일이 었다는 걸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기에 더더욱.

추석에 나타날지도 모를 잉어 귀신을 물리칠 무시무시한 가면과 칼을 들고 싸움을 연습하기도 하고

누가 베트남 아니랄까 봐 오토바이에 탄 채 원하는 선물을 고르는 아이들도 눈에 뜨인다.

아이들 선물뿐만 아니라 집안을 장식할 반짝이는 장신구들도 많이 팔고 있다.


추석선물은 월병

중국의 문화가 들어와서인지 거리에는 월병을 파는데 저렴한 것부터 아주 비싼 것까지 가격도 제각각이다. 보통 월병 하나에 30,000동, 즉 1500원부터 시작이 되고 비싼 월병에는 금박까지 붙여 놓았다고 한다. 요즘은 오리지널 월병뿐만 아니라 초콜릿이나 녹차 맛 등의 월병들도 팔고 더 예쁜 문양까지 새겨 넣은 월병들도 많이 보인다. 원하는 월병을 제각기 골라서 예쁜 선물 상자에 월병을 담아서 지인에게 선물을 하는데

중요한 사람에게 선물을 할 때에는 아주 고급진 상자에 담아서 월병을 선물한다.


추석 밤의 하이라이트인 사자춤 퍼레이드

밤이 되면 베트남 추석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사자춤의 퍼레이드가 거리마다 펼쳐진다. 베트남 사람들은 특히 추석을 맞아 앞으로 일 년 간 가정에서의 평화를 그리고 각 상점에서는 일 년간 장사가 잘 되어달라고 비는 의미로 사자춤을 추는 소년들을 초대해 춤을 추게 한다.

사자춤을 추는 이들은 꼬마에서부터 청소년 사이의 아이들로 이들은 트럭에 공연 물품을 싣고 다니며 집집마다 돌며 사자춤을 원하는지 물어보고 집주인의 허가에 의해 춤을 춰 주는 식이다. 이 춤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오토바이로 이 소년들의 트럭을 쫓아가고 트럭이 어느 집 앞에 멈추면 그를 따르던 오토바이 부대들도 그 집 앞에 진을 치며 구경을 한다.

북과 징을 치면서 분위기를 돋구고 구경꾼들을 불러 모은 후 집집마다 돌면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동네는 북과 징 소리로 가득 차게 되고 사자들은 서로 경쟁하면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사자 옷 안에는 2명의 소년들이 들어가 있고 흥이 돋으면 몸집이 작은 소년이 몸집이 좀 더 큰 소녕의 어깨로 올라가 갑자기 사자가 벌떡 일어서는 모양을 연출하기도 하는데 그때면 사람들의 환호성도 함께 터져 나온다.

이 흥겨운 사자춤의 대가로 집주인들은 행운의 돈 (Lucky Money)를 지불하는데 이 지불 방식이 참 재미있으면서도 특이하고 여러 구경꾼들을 즐겁게 해 주기까지 한다. 2층에서 낚시줄에 매달은 돈봉투를 아래로 아래로 사자들을 놀리는 듯 내미는데 3마리의 사자들은 서로 경쟁을 하면서 돈봉투를 입으로 물으려고 난리를 친다. 경쟁에서 이긴 사자가 마침내 돈봉투를 입에 물면 큰 징소리가 터지면서 모두들 큰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치고 사자춤은 그렇게 끝이 난다.

하노이의 거리에서는 이 사자춤 공연을 무료로 구경할 수가 있다. 사자춤을 알리는 북과 징소리가 울리면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들게 되고 어느 정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소년들은 공연 준비를 한다.

두 명의 소년이 함께 사자 옷 속으로 들어가고 신명 나는 북소리에 맞춰서 사방을 돌아다니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집주인이 주곤 하는 행운의 러키 머니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돈 바구니에 넣는 식이다.

올해 추석에도 베트남의 거리에는 북과 징소리로 가득하다. 아이들은 잉어 등불을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거리의 상점에서는 제사를 지내느라 바쁜 베트남의 추석의 풍경. 비록 이번 추석 때도 한국에서 보내지 못했지만 베트남의 추석을 구경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어 주지 않을까 하며 위안을 삼는다. 또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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