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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ngry Traveller May 21. 2018

불편한 여행이어야 기억에 남는다

베트남의 센트럴 하이랜드

이 여행의 시작은 그러했다. 베트남의 센트럴 하이랜드라는 곳으로 가기 위해 최악의 자리로 여겨지는 슬리핑 버스의 맨 뒷자리에 붙어 있는 침대 세 칸, 그중에서도 맨 가운데 침대에 간신히 끼여 누운 채로 그렇게 아주 불편하게. 그런데 이상하게도 많은 여행기를 잊어버려 늘 함께한 친구들에게 핀잔을 듣곤 했는데 이렇게 고생한 여행은 오래도록 잊히지가 않는다. 이런 것이 바로 고생한 보람이라고 하는 건지. 그래서 고생스럽지 않고 편안한 여행은 여행이라고 부르기도 뭐한다지.

쁠레이꾸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 왼쪽 침대에는 마스크를 쓴 채 죽은 듯이 자던 베트남 여자, 그리고 오른쪽 침대에는 나와 같은 기관에서 파견되었던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일하던 친구가. 나는 그 둘 사이에 끼인 채로 12시간을 그렇게 센트럴 하이랜드로 올라 올라갔다. 화장실 옆 자리라 화장실을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에 깨고 화장실 냄새에 코까지 막아야 하고. 옆에서 움직이면 나도 괜히 움직이게 되고 12시간 내내 꺼지지 않는 무지개 조명을 받으며 거의 날밤을 새운 채로. 전생에 어느 나라 사람이었던지 나는 이상하게 고산지대를 좋아한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사파나 하장 지역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높은 지역으로 가고 싶어서 골랐던 이곳. 가는 길이 겁이 나 그냥 안갈까도 하고 망설이기도 망설였던 이 번 여행길. 우리의 목표는 쁠래이꾸가 아닌 꼰뚬 (Kontum)이었지만 호텔이 많은 쁠래이꾸에서 짐을 풀고 꼰뚬을 가자 그랬던 계획이었다. 다낭을 중심으로 해서 조금 위쪽 지방에서 일했던 친구, 그리고 다낭에서 조금 아래쪽에서 일했던 나. 우리는 다낭에서 만나 쁠래이꾸로 가는 버스를 타자 그렇게 의기투합해 다낭에서 밤 버스 티켓을 겨우 구해 꾸역꾸역 쁠래이꾸로 향했던 것이었다. 다행히 어찌 됐든 시간은 저절로흐르게 마련이고, 시간이 흐르면 힘든 일도 지나쳐 버리는 것처럼, 어느덧 날이 밝아지기 시작하면서 새벽의 공기를 느끼며 우리는 12시간 만에 버스에서 내려 쁠래이꾸 땅을 드디어 밟을 수 있었고. 그리고 미리 예약해 두었던 호텔을 찾아 터벅 걸었다. 높은 지대여서 그런지 공기는 차가우면서도 상쾌했다.

쁠레이꾸 호텔...넓다 지나치게

지나치게 넓었던 아파트 형식의 호텔. 15층 정도였던가 우리가 묵었던 호텔방이. 게다가 호텔은 2층에서 7층까지는 여전히 공사 중이었던, 아주 불편하면서도 특이했던. 만약 혼자였다면 지나치게 길고 넓었던 거실의 써늘한 대리석 바닥에 몸서리가 쳐졌을 것도 같았던 그곳. 화장실 바닥에 물이 빠지지 않아 샤워를 하면 화장실이 한강이 되는 것을 제외하고 그 호텔은 친구와 둘이라서 그런지 그럭저럭 편안했다.

베란다에서 옆으로 긴 베트남 특유의 주택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아침 풍경을 바라보며 찻길만 건너면 되는 커피숍을 발견하고는 우리는 씻기 전에 모닝커피부터 하기로 결정했다.

쁠래이꾸의 커피숍과 커피

사실 우리가 일했던, 도시라고 하기도 뭐한, 그렇다고 마냥 시골이라고 하기도 뭐했던 지역에서는 아메리카노 같은 커피는 마시기도 불가능했었다. 아메리카노라 써 있어서 시켜도 그냥 배트남 커피 맛이었다.  커피 생산지로 유명한 베트남이지만 시골에 가면 베트남 식 커피 외에 맛보기도 힘들었던 지역이었다. 그리고 피자나 스파게티도 맛보기 불가능했던 지역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제법 아메리카노 같은 커피 맛이 나서 좋았다. 커피 생산지역이라서 그런지 커피가 너무 신선하고 맛이 좋았다. 어젯밤에 거의 밤을 새우듯이 버스를 타고 와서 피곤했지만 우리는 이 커피 맛을 천천히 즐기고 싶었다. 그리고 같은 베트남이지만 조금 뭐랄까....... 낯선 느낌이 이 도시를 더 느끼고 싶게 해 주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를 닮은 과일과 고구마

커피를 마시고 과일을 사서 다시 호텔을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느낌의 과일들을 발견하고는 우리는 자두랑 귤 그리고 감도 샀다. 베트남의 고산지대에서만 구경할 수 있는 우리나라 느낌의 과일들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특히 자두, 너. 아침식사로는 과일가게 건너편에 파는 고구마로 결정하고 사탕수수를 마시며 고구마를 싸서 호텔로 들어가서 고구마도 냠냠 먹으며 한가로이 이 낯선 도시의 서늘한 오전을 즐겼다.

꾼똠으로 가는 버스

11시경 호텔에서 나와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인 꼰뚬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12시간 밤 버스 후 또다시 1시간 동안 버스를 타야 한다니 지겹기도 했지만 창문을 활짝 열어 두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그리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아직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곳이어서 그런지 외국인인 우리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 앉았던 베트남 여자애는 자꾸 창문 밖으로 카메라를 빼서 사진을 찍는 나를 만류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내 카메라가 밖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 같다. 왠지 그 애 때문에 나는 사진 찍는 거에 소심한 마음이 생겼다.

관광 전 커피 한잔!

막상 꼰뚬 시내 한복판에 내렸지만 이정표도 없고 정보도 부족했던 우리는 도저히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그 오래된 Wooden Church 너님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우선 커피를 한 잔 하기로 하고 그 도시에서는 조금 세련되어 보이는 카페로 들어가 커피를 시키고 도움을 청했다. 사이공에서 머리를 했다던 카페만큼 세련된 베트남 카페 주인들은 아주아주 친절하게 우리에게 꼰뚬의 관광지들을 소개하여 주었고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서 성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또 옮기고.

wooden church

드디어 나무로만 만들었다는 우든 처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교통편이 불편한 이곳에서는 계속해서 걷고 또 걷고 그랬던 것 같다. 고생스럽고 더웠지만 차를 타고 휙 지나치는 거리의 풍경들을 실제로 걸으며 느낄 수있고 지나가다 만나는 낯선 사럼들과의 수줍은 눈맞춤에 미소가 저절로 생겨나는 곳이 좋았다. 현재는 교회 뒷벽을 시멘트로 발랐다고는 하나 아무튼 교회 거의 전체가 이 지방에서 나는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성당. 옆에는 고아원과 수녀원도 두고 있어 자원봉사를 원하는 외국인들에게도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버스로 지나친 이 성당. 이곳도 들르고 싶었지만 집에 가는 길 마지막 버스를 타고 지나친 성당이라 그냥 패스할 수 밖에는.

그리고 드디어 이 지역의 특이한 건축물인 Nha rong Kon Klor. 사실 꼰뚬을 들른 이유는 바로 이것을 보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 건축물에 살았다던 소수민족의 모습도 보고 싶었지만 이제는 많이 현대화된 지역이라 소수민족만의 전통 복장이나 이런 모양의 집도 많이 보이질 않았다. 아쉽게도.

Nha rong Kon Klor

현재 이 건축물 앞에는 주민들을 위한 시장이 열리고 그래도 그나마 이 지역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깝게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va Cafe

그리고 꼰뚬에 살고 있는 예술가가 지었다는 에바 카페.

카페의 건물, 그네 등등 모든 것을 직접 지었다는, 예술가 분이 직접 운영하는 이 카페는 저녁나절을 보내기에 아주 좋은 카페였다. 사실 꼰뚬은 이 에바 카페를 들르기 위해서 여행 올만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좋았다. 커피와 빵을 시켜 먹고 지루해지면 그네를 타고 카페 근처를 한 바퀴 돌아보고 강아지랑 놀이도 하고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곳.

쁠래이꾸를 향하여

서둘러 막차를 잡아타고 쁠래이꾸로 돌아오는 길은 좀 더 서늘했고 안개가 끼기 시작해서 뭔가 베트남 같지 않고 설레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동안 너무 베트남의 더위에 지쳐 있었는지.

쁠레이꾸 터미널에서 호텔 쪽으로 걷는 길에 만난 도넛 집.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그 맛은.

찹쌀 도너츠

한국에서 먹는 맛과 비슷하고 쫄깃하고 너무 맛있어서 5개를 싸왔다. 보통 베트남 거리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간식거리라서 무척이나 반갑고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허기진 배를 찹쌀 도넛으로  채우면서 저녁 겸 술 한잔을 하기 위해 쁠래이꾸 동네를 헤매고 헤매다가 요란한 클럽 음악을 틀어대고 있던 펍에 들어갔다.

안주로 해산물 카레와 야채 볶음 등을 시키고 흑맥주를 한잔했다. 우리가 일하는 지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던 음식과 술... 다만 이 가게는 너무나 혼돈스러운 음악을 틀어대고 어색하게도 일하고 있는 모든 스텝들이 문가에 모여서 클럽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었다. 손님은 우리를 제외하고 1 테이블이 더 있었는데 중년 베트남 남녀들이 모여 앉아서 어깨를 들썪이며 춤을 추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중 내 쪽을 향하고 있던 베트남 중년 남성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손가락으로 우리 쪽을 가리키며 고개를 흔들며 함께 리듬을 맞춰달라고 신호를 보냈으나 나는 뭔가 어색해서 그 아저씨의 눈길을 바로 모른 척해버렸다. 그때 친구가 갑자기 클럽 어때? 그랬다. 클럽? 그래....... 오랜만에 한 번 가볼까? 일단 호텔로 가서 옷이라도 좀 갈아입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우리는 클럽 음악에 흠뻑 취해 있던 그 베트남 중년 그룹을 펍에 남겨두고 호텔로 향했다.

호텔 방에서 본 쁠레이꾸 시 야경

쁠래이꾸에 있다는 클럽 2개 중 어느 곳으로 갈까 우리는 심히 고민했다. 친구는 내 옆 침대에 누워서 어떤 클럽이 갈만한지 검색을 계속했다. 그런데 나는 클럽 선정을 그 친구에게 맡겨 버리곤 그만 꿈나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클럽이라면 절대 마다하지 않았던 나인데 어젯밤 12시간을 밤 버스에서 두 사람에 끼여서 힘든 시간을 보내서 인지 어쩔 수 없이 그냥 잠에 들어 버렸던 것. 아침에 눈을 뜨니 친구는 옆에서 뽀루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는 그때서야 우리가 어제 클럽을 가지 못했음을 기억해 냈다. 그렇게 아쉬웠던 쁠레이꾸에서의 여정이 끝이 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기차를 타기 위해 뀌년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뀌년으로 가는 봉고차에서

리뷰를 보면 쁠래이꾸에서 뀌년까지 봉고차를 타고 가는 3시간의 여정이 힘들다는 말이 많아서 되도록이면 큰 버스를 타고 싶었지만 그냥 죄다 봉고였다. 이때도 나는 최악의 자리에 앉고 말았으니... 봉고차 맨 뒷좌석 중간에 끼어서. 맨 뒷좌석 왼쪽 창가에 앉아 있던 베트남 아줌마는 중간에 토하기까지 했는데 사실 나는 차를 오래 타본 적이 없는 베트남 사람들이 토하는 일이 많다는 걸 알기에 봉고차를 타는 게 겁이 난 거였다. 그런데 토하는 아줌마 옆에 앉아있던 베트남 남자는 암시롱 하지 않고 아줌마를 도와주기까지 하여 나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그냥 앉아 있었더니 어느덧 우리는 순조롭게 1시간 반을 더 달려 마침내 휴게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휴게소에서. 새를 날르는 아저씨와

휴게소에서의 30분은 즐거웠다. 함께 고생을 해서였는지 우리들은 서로 휴게소에서 밥을 먹으라고, 밥 왜 안 먹냐며 말을 나누고, 사실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손짓 발짓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새장을 들고 새를 나르는 아저씨한테 새 구경을 하게 해달라고 하기도 하고 아까 속이 안 좋아서 고생을 했던 아줌마한테는 배 안 아프냐 안부 인사도 전하고. 함께 고생을 해서 인지 처음 만난 사이었지만 뭔가 친밀했다. 그리고 재밌었다.

마침내 뀌년에.
뀌년 독일식당에서 피자를

뀌년에서는 밤기차를 타야 해서 그리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시내 한복판에 있는 독일 식당에서 피자를 시켜 먹고 주변을 조금 서성이다 보니 어느덧 기차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뀌년의 해변
독일 식당의 댕댕이

맛있게 피자를 해치우고 댕댕이한테도 조금 나눠주고 해변가도 조금 걸어보고 우리는 기차를 함께 탔다. 나는 3시간 후, 그리고 내 친구는 5시간 정도 후면 집에 도착해 있겠지...... 이렇게 헤어지는 게 아쉽기도 했지만 늘 즐거운 여행을 선사해주는 친구에게 너무 고마웠다. 다음에 우린 또 어딜 같이 갈 수 있을까. 고생스러웠지만 재밌었다. 한 번 더 가라고 하면 안갈 것 같은 아니 못 갈것 같은 고생스런 여행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오래도록 기억하겠지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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