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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log Dec 15. 2022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

2022.12.06 (화)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고용량 비타민C 주사를 맞으러 간다. 사실 어릴 때부터 아팠던 터라 실비 보험이 없어서 일반 암환자들이 요양병원에서 하는 치료들을 하지 않았다. 고주파 온열요법, 미슬토 주사와 같은 치료들 말이다. 여러번 재발이 되면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보고 싶었다. 유튜브로 구독하고 있었던 건강관련 채널 중 성북구에 있는 '미토 의원 TV'가 있었는데, 원장님이 해주시는 말씀과 정보, 가치관 등이 믿음이 가는 부분이 커서 여름부터 비타민 치료를 시작하였다.


일반인은 받지 않고, 오직 암환자들만 대상으로 하는 병원이다. 실비 보험이 없어서 꼭 필요한 치료만 권해달라고 이야기했고 삼중음성 유방암에는 고용량 비타민C의 효과가 좋았다면서 권해주셨다. 몸무게에 비례하여 1주일에 두 번, 60mg을 맞고있다. 유방 수술로 양쪽 팔을 보호해야해서 발등에 주사 바늘을 잡는데, 살이 없어서 그런지 혈관 찾기도 어렵고 여러번 찌르는것이 영 고통스럽다. 그래도 몸이 좋아진다는데 참고 열심히 다니고 있다. 꽤 요령이 생겨서 림프절을 떼지 않은 팔로도 가끔 주사를 맞는다.


그날도 앉아서 주사를 맞고 있었다. 비타민C 주사는 보통 빨리 맞는게 좋다는데 나의 경우 혈관이 좋지 않아서인지 1시간 반 ~ 2시간 정도 주사를 맞곤한다. 아무것도 안하고 멍하니 있기에는 다소 긴 시간이라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거나 책을 보곤하는데, 새로온 환자라며 키와 몸무게를 재고 오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앉은 자리 바로 앞에 신장과 몸무게를 재는 기계가 있었는데, 키가 크고 깡 마른 남자 환자가 그 위에 올라가려 애를 쓰고 있었다. 보호자가 부축을 하긴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것도 위태롭기 그지없어 보인다. 키를 재는 기계에 올라서려면 약간의 단이 있어 올라서야 하는데, 중심을 잡지도 못하고 휘청거려 그 위에 올라서는데 한참이 걸렸다. 다른 간호사 선생님의 부축까지 받고서야 겨우 신장을 측정했다.


나는 왜 그 분을 당여히 나이 든 노인일거라고 생각했을까. 환자가 키를 재기 위해 몸을 돌아서는 순간. 나보다도 어린 젊고 앳된 청년이 보였다. 보호자가 할아버지 자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다 싶었는데, 아들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빡빡 깎은 머리 중간이 움푹 들어간 것이 보였다. 아마도 뇌 수술을 한 것 같았다. 하... 진짜 나도 난데, 저 청년이 꼭 다시 건강해질 수 있게 해달라고 화살기도를 했다. 멀쩡하게 잘 생겨서 더 속상했다. 왜 세상에 어떤 사람은 이렇게 아프고, 어떤 사람은 술 담배 그리고 나쁜 음식을 잔뜩 먹는데도 건강하게 오래사는 걸까?


이게 남 얘기가 아니라 나의 일이 되버리면 참 입맛이 쓰고 할 말이 없다...


청년을 바라보다가 또 너무 쳐다보면 누군가의 그런 시선도 불편할 것 같아서 눈을 돌렸다. 야속하게 하늘은 파랗고 오랜만에 구름도 예쁘다. 이렇게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공식적인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전깃줄이 쳐져서 아쉽긴 하지만 덕분에 종종 새들도 앉아서 쉬었다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구름이 흘러가는 풍경을 몇 시간이나 앉아서 볼 수도 있다.


이제 다음주에 병원이 다른 곳으로 이전 하면 주사 맞는 공간에 이렇게 큰 창이 있을지 모르겠다. 강남대로 한복판이라 차도 더 많고, 건물들도 더 많을텐데 조금이라도 녹색 그리고 파란색 풍경이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 싶었다. 오늘 본 키크고 마른 청년이 건강해져서 씩씩하게 잘 걷고, 살도 많이 붙었으면 좋겠다. 


세상에 모든 아픈 사람들이 기적처럼 다 나았으면 좋겠다. 하늘에 대고 한참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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