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문명의 발상지인 ‘쉬러즈Shiraz’는
23개의 소도시로 이루어진 <파르스Fars> 주의 중심도시이다.
그나마 기후가 좋은 편이어서 1,000년 이상 지역의 교역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나무 한 포기 없는 암산(巖山), ‘라흐 쿠이마트’ 기슭에 자리잡은 사라진 제국. )
스위스 청년과 중국아가씨와 함께 1인당 10유로씩을 내고 택시를 하루 빌렸다. 언뜻 스쳐가는 주유소 팻말에 1L, 1만 리알(80원 정도)이다.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 다음에 드는 생각은 과연 산유국답다는 생각이다. 물처럼 나오는 것일까? 여하튼 물값 보다 싸다.
카스피해 연안 국가들에서는 기름이 물처럼 나온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 바닷가에서 기름이 줄줄 흘러내리던 갯바위들을 보고 소름이 끼쳤던 기억이 난다.
검색을 해보니 한국은 지금 2299원이다. 거의 30배 가까운 수준이다. 차를 비행기에 실고 이 나라에 와서 운행할거나. 그래도 기사님은 ‘외국인에게는 싸고 현지인에게는 비싸다’고 한다. 하긴 트럼프 대통령의 제재로 얼마나 살기가 힘들까.
(스위스 청년, 중국 아가씨와 이란인 기사, 아크로폴리스에서 그가 준비한 차와 크랙커를 먹으며.)
택시기사 이름이 <알리>다. 다음에 아들을 나면 <래자>로 하고 그다음 <후세인>으로 하라며 가벼운 농담을 나누었다. 전부 ‘이맘*들의 이름이다. 미국은 지금 이란을 세계에서 가장 과격한 나라라고 하며 금방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경제제재를 하고 몰아 부친다. 원유선들이 지나가는 호루뮤즈 해협도 봉쇄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정말로 이란인들은 그렇게 ’급진적‘인가?
무슬림에는 <시아, 순니, 수피파>가 있다. 그중 이란은 대부분 <시아파Shia>이며 여러 하위 분파 중 주요 분파로는 ‘12대 이맘파’와 ‘7대 이맘파’가 있다. 지금은 12대 이맘까지 온 셈이다.
그런데 874년에 12대 이맘 ‘메흐디Mehdi’가 사라졌다. 이것을 ‘이맘의 은폐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무려 1146년 전이다. 이 오랜 기간 동안 한국의 불자들이 미륵을 기다리는 것처럼 시아파 이슬람들은 지금 매흐디의 재림(再臨)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시아파만의 특징이 있는데, 첫 번째로는 <신의 빛 이론>이다. 즉 ‘신은 매 단계마다 누군가를 선택하여 그에게만 능력을 내리는데, 그에 따르면 유일한 하느님의 상속자는 이슬람 4대 칼리프 ‘알리Ali*(최초의 남자 무슬림)’이며, 그만이 신의 빛을 받아 선택된 자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전의 1, 2, 3대 칼리프는 알리의 지위를 찬탈했다고 하며, 그 권리마저 인정하지 않는다.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는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으로 AD 601년 9월 15일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태어났다. 무함마드의 보호자였던 아부 탈리브의 아들이다. 그는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와 결혼하였으며 이슬람 초기 4대 칼리파가 되였다. AD 661년 무아위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나 잘못된 협상을 하여 그에게 충성을 다하던 젊고 급진적인 '카와리자파에 의해, '1월 29일 이라크 쿠파(Grand Mosque of Kufa)에서 암살당한다.
(이슬람 초기 4대 칼리파,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위키메디아 제공)
*아랍어로 ‘지도자’,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을 의미, 이란을 이슬람 국가로 만든 호메이니나 그의 후계자인 현 하메네이도 스스로를 ’이맘‘이라 부른다.
다음으로는 <정의에 대한 교리>이다. 성직자는 ‘절대로 잘못이 없는 청결한 사람’이어야 하며, 이슬람법의 해석권(결정권)을 갖은 이맘을 보위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타끼야Taqiya론>이다. 이것은 ‘믿음을 위한 거짓말은 종교적으로 옳은 행동이라고 자신들을 인정’하는 것이다.
성지순례로 유명한 곰Qom이나 마샤드Mashad에 가면 수많은 모스크와 성직자, 신실한 무슬림들이 평화롭게 모여 사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포식자들을 피해 사막으로 같다는 낙타, 관광객들을 기다린다.)
페르세폴리스가 멀지 않는 모양이다. 길에 낙타를 세워놓고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호객꾼이 나오는가 싶더니, 석류와 오렌지, 밀감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줄을 잇는다. 집이 몇 채 서 있는 조그만 가게 앞에 기사가 차를 세우더니 허름한 가게로 들어가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사준다. 그의 단골집인 듯 익숙하다.
따뜻한 심성의 그는, ‘현지인이 사면 싸고 여행자가 사면 비싸다’고 하며 웃는다. 관광객들에게는 그래 보았자 이란의 물가인데 하는 마음도 들지 않을까, 그들은 참으로 힘들 것이다.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마운 사람이다.
(이란의 대표 과일, 주먹만한 석류. )
그 옆에는 늙수구레한 노인이 트럭 뒤에 석류를 잔뜩 쌓아놓고 팔고 있다. 이란의 특산물인 석류는 아주 크고 당도가 높으며 무엇보다 아주 싸다. 곳곳에서 즙으로 짜주는데, 핏빛 보다 더 붉은 석류즙은 피로회복에 좋다.
덥고 오토바이 매연이 많았던 테헤란 거리를 걷다가 그 향기와 빛깔, 맛에 취해 연거푸 몇 잔씩 마셨던 기억이 난다. 특히 테헤란 국립 귀금속 박물관 건너편 환전 거리나 테헤란의 가장 중심가 사거리 모퉁이 백화점 근처에 많았다.
(이란인에게 삼성매장 근무는 선망의 대상일까, 마치 우리가 외국계 회사에 가고 싶었던 것처럼. 그들의 눈매에서 자부심이 묻어 나온다.)
(삼성과 LG에서 쇼핑을 마치고 나오는 행복한 이란 부부,)
나는 이 백화점에 가면 잠깐씩 착각을 일으켰다. 1층의 거의 전부를 삼성과 LG가 나누어 쓰고 있었으며, 쏘니를 비롯한 다른 국가 전자매장들은 한 쪽에 조그맣게 놓여있었다. 2층부터는 작은 휴대폰 가게들이 즐비한데, 대부분 매장 앞에는 삼성의 간판이 붙어있어 용산이나 남대문의 어느 전자매장 거리에 온 느낌이었다.
어른 주먹보다 더 큰 석류가 5개에 6만 리알(500원 정도)인데, 너무 익어서 껍질 곳곳이 벌어져 있다. 다시 오렌지를 더 사고 돈을 내려는데 할아버지가 잊어 버렸는지 아까 산 석류값을 다시 내라고 독촉을 한다. 아까 드렸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다행히 기사가 와 말을 하니 알아먹은 눈치다. 혼자 있었으면 참 황당했겠다. 그는 덤으로 석류와 커피를 함께 먹으면 배가 아프다는 정보까지 준다.
(이란인들의 체형은 큰지만, 아직 문명이 덜 미친 순박함이 살아있다. 페르세폴리스에서.)
페르시아 문명의 발상지인 ‘쉬러즈Shiraz’는 23개의 소도시로 이루어진 <파르스Fars> 주의 중심도시이다. 그나마 기후가 좋은 편이어서 1,000년 이상 지역의 교역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1750년에서 1781년까지 31년 동안 유지되었던 <잔드Zand 왕조>와 사파리드 시대에도 잠시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였다. 잔드 왕조지구를 이루는 카림컨 요새Karim Khan Fortress, 바킬 바자르Vakil Bazaar, 바킬 목욕탕Vakil Bath, 바킬 모스크Vakil Mosque는 당시의 흔적들을 잘 간직하고 있다.
특히나 ‘시와 와인, 꽃의 도시’로 유명하며 많은 정원과 과수원들이 있는 ‘정원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석유 정유와 이란의 전자 산업의 중심지로 이란의 전자투자의 53%가 쉬라즈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