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산문집

그런 경험조차도 소중했다.

시험이 끝나고나서야 깨달은 것들

by Anndrew


25살, 호기롭게 선언하고 학교를 떠나 시험을 치렀다. 하지만 노력과 생각과 모든 기대들은 바라던 결과와 일치하는 건 아니었다.


길었던 시험을 스스로 종지부 찍고 굴욕적으로 학교에 돌아갔다. 내가 선택한 순간들과 모든 행동이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졌고 나이만 훌쩍 먹었다. 대학 동기는 하나 둘밖에 남지 않았다.


자존감이 밑바닥에 내려와 거울 속의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거울에 비쳐지는 내가 낯설었다. 모든 일에 시니컬해졌다. 사람과 만나는게 싫었다. 어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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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인생에서 패배주의와 모든 현학적 생각, 몽상들을 던질 수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환상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냈다. 스스로를 맨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사나이로 세팅하였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새로 배우고 해내겠다는 정신을 얻은 것은 큰 수확이었다. 나는 내가 다른 일들을 잘 해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 시험을 치렀다. 그런데 가만보니 노력과 근성으로 못 해낼 일이란 없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들, 두려움에 시작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 둘씩 시작했다. 경제학을 공부하고 블로그도 운영했다. 생각지 않은 분야에 지원서도 넣었다. 인격적으로 성숙해졌다. 다른 사람의 슬픔의 깊이를 가늠하게 되었다. 값싼 동정의 아픔을 이해하고 지양하려 노력했다. 자존감이 낮아질대로 낮아져본 경험도 돌아보니 소중했다.


무엇보다 솔직해질 수 있어 좋았다. 내 감정과 바라는 것들을 솔직하게 대했고, 내 생각과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아끼고 보살피며 좋은걸 먹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실천에 옮기니 정말 좋았다. 나를 위해 요리하는 기쁨은 달다.


성취하지 못한 일이 여전히 그립기는 하다. 최근 그 때 그 시험날이 다시 돌아오자 이유없이 극심하게 우울했다. 하지만 인생에 당장의 성공의 연속이 꼭 더 좋은 것은 아닌가보다. 성취하지 못한 현재의 내 모습이 긍정적이고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을왕리를 갔다. 을왕리 어두운 밤바다를 비추는 달이 고혹적이었다. 달이 주는 감동에 매료되어 마음의 어두움은 또 한꺼풀 벗겨지고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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