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참 이기적이다.
진행하고 있는 인턴 과정은 세 차례 진로 면담이 있다. 이제 그 마지막 순서였고 시곗바늘이 오후를 가리킬 무렵, 팀장님께 말씀을 드리고 일터에서 걸어 나왔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상담은 2시 반이기에 면담만 끝나면 퇴근하니 기분이 좋았다.
40여분 남짓한 화성 외곽 길을 따라 걸으며, 함께 일하는 인턴과 농담을 주고받다 여유로이 센터에 도착했다. 고풍스러운 장안문은 늠름히 위용을 뽐내고 있었고, 촉촉이 젖은 초겨울 비는 때 늦게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 스산한 거리 분위기를 아우르고 있었다.
센터 문을 열면서 불현듯 불안했다. 허나 한낱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면담을 느긋이 기다릴 무렵, 함께 일하는 또 다른 인턴 분이 들어왔다. 그의 면담 시각은 3시 반, 현재 시각은 3시가 다될 무렵이었고 면담은 전체적으로 지체되는 분위기였다.
"2시 반인데 아마 3시쯤 시작할 것 같아요 형."
"... 그건 말도 안 되지. 나 이거 따져야겠어."
... 이 형은 따지기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때마침 면담을 마친 상담사가 걸어 나왔다. 이제 나의 차례. 그리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는 득달같이 상담사에게 따졌고, 그녀는 대단히 난처해했다. 잠깐의 실랑이를 벌이다가 상담사는 내게 눈짓을 보였고,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눈짓을 보냈다. 그런데 그녀는 나의 눈짓을 마치 "당신 마음대로 해도 괜찮아요."로 읽은 듯했다. 불안감이 스쳤다.
내 생각은 정확했다. 상담사는 나의 타임과 그의 타임을 마음대로 바꾸었다. 내 눈짓을 시간을 바꿔주라는 의미로 해석한 셈이다. 한번 양해를 구해준 입장이 돼 버리자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설명하는 것도 민망한 상황이었고, 나는 그대로 꼼짝없이 3시 반 타임, 정확히는 4시 즈음에나 시작할 면담을 기다려야 했다. 시간은 무척이나 길었고, 내 예상 퇴근 시간은 이제 원래보다 2시간은 더 늦게 생겼다.
'그래도 괜찮을 거야. 잘한 거야. 난 양보한 거야. 상담사는 대단히 지친 기색이었잖아.'
4시. 상담사는 나를 상담실로 들이며 미안하다고 하였다. 어째서인지 미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미안함의 감정보다는 지속적인 딜레이로 면담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속사포처럼 자신의 상담 전달 사항을 일방적으로 전달했고, 그 면담실에 있으면서 나의 기분은 점점 상해갔다. 이 배려 없는 두 남녀에게 내가 무엇을 기대하고 양보한 걸까라는 회의감이 같이 들었다.
심지어 면담 중에 그녀는 뼈아픈 말을 건넸다. 내가 체크한 검사 표에 대한 해석을 토대로 말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낮춰주세요. 상대에 대한 믿음은 이렇게 낮으시면서. 이런 경우 스스로의 양보로 실망하게 되고, 이걸 가리켜 사람들은 오지랖이라고 표현하죠."
면담이 끝나고 문을 닫고 나섰다. 장안문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좀 전의 위옹 한 자태는 온데 없고, 이번에는 내게 음침한 건축물로 느껴졌다. 그렇게 장안문을 따라 화성 외곽 길을 따라 걸었다. 아까 걸었던 30여분 남짓의 그 거리는 자괴감과 짜증으로 뒤섞였다.
아마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나는 기꺼이 그녀에게 같은 눈짓을 보냈을 것이다. 만약 그가 내게 직접적으로 면담을 바꿔달라고 한다면, 나는 멍청한 기분과 함께, 다시 그에게 양보할 것이다. 심지어 이건 착한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그녀를 돕고자 하는 마음은, 잠시의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이 들었을 거다. 하지만 위로를 기대한 내 마음은 대단히 흔들렸다. 양보의 대가로 위로와 인정을 받으리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한낱 이기심의 발로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나의 태도는 왜 내가 손해 보아야 하는 가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다.
달은 이내 곧 하늘을 잠식할 듯이 보였다.
다음 날 구내식당.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 좋아하는 유자를 퍼갈 수 있도록 올려져 있었다.
‘그래, 올라가서 유자 한 잔 하고 피로를 날려야겠다.’
그렇게 유자를 종이컵에 담아 책상에 올려두고 잠깐의 쪽잠을 잤을까.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잠에서 깨 화장실을 오가는 데 사무실 앞에 어머니 한 분이 청소도구로 바닥을 긁고 계셨다. 사무실 밖의 바닥은 차가웠고 어머니는 쪼그려 계셨다.
불현듯 집에 계실 어머니 생각과, 자리에 돌아오니 책상에 잠에서 깨고 나서 마실 요량의 유자 담은 종이컵이 놓여있다. 결심은 어렵지 않았다. 12월은 특별하며, 한번쯤 더 손해 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컵을 들고 유자에 따뜻한 물을 담아 수저로 저어 내어드렸다. 그리고 어머니의 짧지만 진심이 담긴 한 마디에 내 마음도 녹았다.
"고마워요, 청년."
나는 어쩌면 이 단순한 한마디를 기대해오고 또 실망해왔는지도 모른다. 진중한 태도의 감사와 소박한 마음이 담긴 어머니의 한 마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풀렸다.
'조금 손해 볼지언정 이런 나의 태도를 버릴 수는 없어.'
책상에 이제 내 몫의 유자차는 없다. 그러나 이미 온기는 충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