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없는 이곳
긴 하루가 끝나고 집에 들어와 불을 키면 나의 방이 오손히 기다리고 있다.
불을 킬 때 손 끝에 느껴지는 작은 쾌감. 나의 하루의 시작과 끝은 이 방의 불을 끄고 키는 행위이며, 어느새 내 삶의 작은 기대는 불 키는 이 순간을 기다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불을 꺼야 함을 알기에 큰 즐거움이 아니다.
방 안을 찬찬히 살피면 전에는 익숙했던 사물 하나, 둘.
저 펜은 언제부터 저기에 놓여있었나.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펜.
무심코 놓은 펜이 잊혀지는 것은 금방이다. 길들여짐이 그렇다. 익숙함은 그 존재를 잊게 한다. 같은 처지의 펜 하나, 책 한 권이 눈에 차츰 들어오며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이리도 무심하구나.
이 펜에겐 내가 소중한 주인일텐데, 이리 내게 잊혀지다니. 펜 하나에 내가 길들여져 잊은 이름들이 떠오르고, 그 생각이 마음을 계속 짓누른다.
살펴보건대, 이 방엔 소망이 없다. 무기력하고 무심한 내가 주인인 이 방엔 기대할 만한게 없다.
방의 불을 끄면서, 내일은 조금 달라질까 살포시 기대를 품고 오늘도 이 몸을 뉘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