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산문집

첫 사랑

안경잡이 그녀

by Anndrew



좌우 4인치에 정갈하고 하얀 자태.

순두부를 먹다 그만 그녀 생각이 났다.





고2 봄, 친구와 배식 봉사를 했다. 처음 봉사를 위해 점심 시간 식당으로 내려갔을 때, 그녀는 그곳에 있었다. 새하얀 얼굴에 동그란 안경 쓴 그녀. 밝고 쾌활한듯 하나 어딘지 우울감이 감도는 그런 아이였다.



그녀는 국을 단아하게 풀줄 알았던 아이였다. 내가 갓 쪄낸 뜨끈한 밥을 푸면, 그녀는 내 옆에서 국을 푸었다. 나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 눈에 들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녀로 인해 내 이상형이 처음 정의되었다. 하얀 얼굴에 동그란 안경쓴 사람. 차가운듯 따뜻한 사람.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은 사람.


한 학년 어렸던 그녀, 나는 밥, 너는 국이라고 어느새 서로 애칭도 만들었던 것 같다. 다만 늘 남아서 자율학습했기 때문에, 가끔 같이 걸어가는 정도가 다였다. 5분거리 집을 데려다주는 하루는 피로가 싹 가시는 그런 하루.



친구들과 학교 문을 나서다 저 발치에서 그녀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냉큼 뛰어가 그녀에게 아는 체하곤 했다. 그 때에 그녀는 수줍게 손짓했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걸 수도 있지만. 그리고 우리는 조용히 밤길을 걸었다. 달빛이 밝았지만 낯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지만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집이 가깝지 않았고, 학년도 달랐다. 둘 다 모범생이었기에 특별히 노는것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잠깐의 점심과 저녁시간에 봉사하는게 다였다. 내가 더 용기내어 친분을 쌓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냥 그대로 내 마음을 방치했다. 정확히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몰랐다고 해두자.


모든 방치한 마음이 다 그렇듯이, 우리 사이는 특정 선을 두고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았다. 차츰 그녀의 문자 답신은 뜸해졌고, 내 맘은 더욱 애달았다. 어느새 가을이 다가왔다. 내 마음은 조급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나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비는 사람을 움직인다. 어느 매서이 비가 내리던 저녁이었을까. 왜인지 내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다. 나는 '만나자'는 문자와 함께 그녀의 집 앞에 서있기로 했다.


그렇게 한 시간인지 두 시간인지. 시간이 흐르며 초조해져가고, 우리는 서로 직감하고 서로 깨달았다.


하지만 지금 빠르게 지나가는 초침이 영원히 머무른다면 나에게도 기회가 올 수도 있을텐데.

밤은 깊어갔고 계속하여 비가 내렸다. 차가운 핸드폰은 야속하게 그 상태 그대로였다. 수어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 정도는 나도 알았다. 그러나 납득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살던 집을 몇 번이고 올려다보았다. 미동은 없었다.


그날 밤 집에 어떻게 들어갔는 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나는 더 진행할 용기가 없었다. 그러나 단념할 용기도 없었다. 내 마음은 그렇게 방 한 구석에 초라히 있었다. 잔뜩 풀이 죽은 채로.






그 해 겨울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채로 고3을 맞이했던 것 같다. 일말의 기대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차츰 잊어보려 노력했다.


어느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았다. 어렴풋한 얼굴, 그리고 이름. 나는 매서이 공부에만 집중했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차츰 흐려졌다. 흐려진 기억과 감정을 그대로 마음 한 켠에 밀어 넣어 두었다.





7년이 흘렀다.


올해도 어김 없이, 따뜻한 바람과 함께, 꽃이 도로변 좌우로 조금씩 피기 시작한다. 영롱한 봄이 고개를 비튼다.


이 맘 때면 간헐적으로 그 때가 생각난다. 새하얀 것을 먹을 때면 그 때가 생각난다.


이제 몇 안 남은 새하얀 기억, 그리고 감정.








"너 걔랑 사귀면 뭐부터 하고 싶어?"


"나? 손 잡고 걷고 싶지.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든, 손만 잡고 있으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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