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bye, Some day
시카고 컵스가 108년 만에 우승할 때 알아챘어야 할지도 모른다. 무려 108년 만이다. 확실히 특별한 1년이다. 그러나 컵스가 우승할 때까지의 추억만 간직해갔으면 좋았을걸. 진실을 마주하는 건 언제나 슬프다.
# 거대한 슬픔
지난가을, 역전을 걷는데 뒤에서 노인의 구슬픈 목소리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때... 5.18 때....! 광주에서...! 나 혼자만 살고...! 우리 동료들 다 죽고...!"
이후 말없이 울음만 삼키는 것이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으나,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딘가를 응시 히지도 않았다.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대개 술에 흠뻑 취하여,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들이었다. 그러니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광주에서의 그 일은 벌써 36년이 지났다. 그러나 슬픔엔 유효 기한이 없었다.
# 국정 농단
11월은 그녀에게 악몽이었을 거다. 그러나 그녀는 국가 통수권자가 얼마나 많은 시민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지를 좀 더 일찍 깨달았어야만 했다. 권력자는 자신이 도덕적으로 보이는 데에 끝내 실패했고, 시민들이 그런 대통령을 심판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악마를 보았다
늦은 아침을 먹으며 청문회를 시청했다. 국회의원은 하나 같이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질의 요청하였다. 주요 질의는 세월호 7시간 관련 의혹에 관련된 사항이었다.
김경진 의원 차례였다. 고 김영한 씨의 비망록을 꺼내 들며, '세월호 인양하지 말 것... 정부에 불리...'라는 비서실장의 지시로 확실시되는 부분을 언급하며, 이것이 비서실장의 지시 사항이 아니냐고 추궁하였다. 비서실장은 답변하기를 이는 모르는 일이며 비망록이 주관이 개입된 부분이라 답변하였다. 그는 거듭 '모른다'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인양을 지시한 사람은 없는 데 인양은 되고 있지 않았다. '발포한 사람은 있는 데 발포 명령권자는 없다더라'... 는 36년 전 5.18이 똑같이 재현되고 있었다. 역사가 이리 되풀이되는 것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건 한낱 이성이 통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그것은 순수한 종류의 것이어서, 이성도 그러한 분노를 기꺼이 인정한 것 같다.
# 광화문
나는 다만 좀 더 진솔한 태도를 바랄 뿐이었다. 단지 그것만을 바랬을 뿐이었다.
저녁이라 부르기 이른 시간, 전철을 내려 광화문을 향해 걸었다. 무엇을 위해 걷는가, 무엇을 향해 걷는가를 생각했다. 같이 걷는 이들이 있어 든든했다. 이순신 장군상은 외롭지 않았다.
어두워지자 촛불을 켰다. 촛불을 들여다보며 한없이 부끄러웠다. 나는 깨끗한 사람이 아니었다. 잘못에 대해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지라 하였다. 나는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있는가. 마음이 초연했다. 단지 어두워서 불을 켜야만 했을 뿐이다. 그 불은 뜨거워서, 낮의 해와 밤의 달로도 해치지 못했다.
나는 높으신 어느 누군가에게 개돼지로 통칭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나른한 오후에 촛불 들고 무리에 몸을 끼는 일이었다.
그곳엔 지팡이를 짚고 서로의 손을 꼭 잡는 노부부, 초면에 단 사탕을 내어주신 어르신, 내 엉덩이를 위해 자기 방석 하나를 내어준 형님이 있었다. 일전에는 나 같은 소시민적 삶이 어머니의 차려주신 밥 축내는 일뿐이었다. 그러나 드디어 나의 몸뚱이를 쓸모 있는 데에 보태었다.
# 여전히 겨울
... 대한민국은 다르다. 정부 수립 이후 50년 넘게 국가권력을 장악했던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은 국가주의 국가론을 신봉해왔다. 이 정치세력이 마키아벨리 방식의 철권통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통치권자의 힘'이 '국민 전체를 합친 힘'보다 우세하다고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충분한 자신감만 있으면 언제든지 시민들을 국가에 종속시키려는 국가주의적 행태를 재현해낼 것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난 금요일에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기쁠 줄만 알았더니 그렇지만도 않다. 씁쓸함이 남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날이 풀렸나 싶더니 금세 바깥 날씨가 차다. 겨울은 원래 길었고, 여전히 세상은 많이 아프다.
지난 45일간 시민들은, 시민이 국가의 종속 아래에 있지 않음을 보여왔다. 이 또한 역사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는 어둡고 춥다. 조금만 더 사회가 건강해지길 바란다. 우리 사회가 보다 이성적이고 더 따뜻해지는 그런 봄날을 기다려본다.
그 어느 날은 분명히, 반드시 예상치 못하게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