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가, 가을이 아름다워 들어가지 못하고 밖을 서성였다. 아마 마지막 가을일 것 같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여름옷을 개어 정리한지도 오래인데, 때 아닌 포근함으로 정취에 한껏 젖었다.
가을은 좋은 친구여서 늘 약속을 지킨다. 사정이 있어 늦게, 혹은 조금 일찍 떠나지만, 매년 어김없이 잠깐이나마 문을 두드린다.
올 해는 가을을 한껏 누리지는 못했다. 잠깐이나마 햇볕과 낙엽을 밟으니 한결 마음이 정갈하다.
잎새가 하나씩 떨어지는걸 지켜보며, 쓸어낼 누군가의 고생과, 다가올 겨울에 대한 걱정이 든다. 그리고 마음 깊은 밑바닥 무언가와 마주한다.
언젠가는 인생의 걸작을 그려내겠다던, 그리고 차가운 마지막 가을밤, 마지막 잎새를 그렸던 베어만 노인이 생각난다. 결국 수는 나폴리만을 그렸을까?
올바른 삶을 살아감이란 생각보다 쉽지 않고, 많은 용기가 필요하겠지. 고개를 잠시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수북히 쌓여있는 낙엽을 보며 마음이 포근해진다.
화광반조. 좋아하는 말이다. 촛불은 마지막에 불타 아름답다. 가을은 이별을 앞두고 따뜻한 손을 내게 건냈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가을처럼 살고 싶은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