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 치료법
우울증으로 정신의학과에 다닌 지 6개월이 흘렀다.
우울증을 비롯한 각종 정신질환에 대해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 중인데 다행히도 둘 다 내게 잘 맞는 듯하다.
모든 정신질환의 치료의 시작은 밥과 잠이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고 가장 중요하다.
이 두 가지만 잘해도 우울증 치료의 절반은 성공이라 말할 수 있겠다.
실제로 내가 겪고 느낀 것이니 속는 셈 치고 한 번쯤 믿어보기를 바란다.
잘 먹는 것은 꽤나 중요하다.
배고픔을 느끼지 않아도, 먹고 싶은 것이 딱히 없어도 밥을 제때 챙겨 먹으니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 비록 누워서 휴대폰만 보는 에너지일지라도 없던 에너지가 생기긴 한다.
잘 자는 것은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6개월간 잘 잤다고 할 수 있는 날이 손에 꼽힐 정도이니까.
정신의학과에서 처방받은 약의 도움으로 잠드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게 되었지만 과다수면 또는 악몽 등으로 수면의 질이 좋지는 않다. 가위눌리는 일이 흔한 일이구나 싶은 요즘이다.
잠이 오지 않아도 문제, 잠이 와도 문제다.
잘 때만큼은 긴장을 풀어야지, 겁먹지 말아야지, 무너지지 말아야지 등 스스로 걸었던 최면이 풀리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일까. 오늘은 최면이 풀리지 않기를 바라본다.
이 최면이 풀려도 잠을 푹 잘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는.
우울증 치료 중에도 가끔씩 속에서 열불이 난다.
순식간에 흥분 강도가 1에서 10이 된다. 점점 분노가 쌓이는 것이 아니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솟는다.
갑자기 트라우마가 떠올라 흥분하기도 하고 사소한 것에서 분노조절에 실패할 때가 종종 있다.
내가 다니는 정신의학과 옆에 위치한 한의원에서는 화병(火病) 클리닉을 전문으로 한다.
정신의학과에 가려면 화병클리닉 전문 한의원을 지나쳐야 하는데 요즘따라 자꾸만 멈칫하게 된다.
트라우마로 인한 우울증을 안게 된 후로 더 이상 나빠질 일은 없다고,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희미해질 테니 자연스럽게 화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날들이 많아질수록, 괜찮아지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화가 올라올 때 더 심하게 치솟았다.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 어떻게 버티고 있는데 왜, 왜 아직도 뭐 때문에.
정신질환에 보상심리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 이 정도는 나아져야 하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내가 바보 같다. 정신질환을 고치고 싶다면 보상심리 따위는 진작 버리고 시작하길 바란다.
다행히도 지금은 나에 대한 통제가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여기에 화병클리닉까지 받으면 정말이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릴까 봐 지나친다. '잘했어 아주'라는 말과 함께.
한의원의 화병클리닉 대신 내가 찾은 우울증 치료법은 작고 잦게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법은 생각보다 간단할지도 모른다.
내가 찾은 방법은 좋아하는 걸 늘려가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들로 세상을 채울 순 없어도, 세상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좋아하다 보면 잦게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잦은 행복이 쌓이면 비로소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이 된다.
미워하는 걸 미워하지 않기란 내겐 너무 어려운 일이다.
미운 건 미운대로 놔두고,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마음을 넘어 사랑하고 싶다.
늘 행복할 순 없겠지만 작고 잦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길,
세상 곳곳에 깃든 애정이 나의 행복이 되어주길 바라며.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라는 말이 있다.
사회에서 말하는 행복이,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이 나의 행복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행복은 집 근처 카페에서 카야토스트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기, 비 오는 날에 창가에 앉아 시티팝 듣기, 자라 신상 구경하며 피팅룸에서 패션쇼 열기, 팝업스토어에서 예쁜 쓰레기 구입하기 등 사소한 것들에서 나온다. 난 이미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어떤 날에는 태극당 모나카 하나에 하루치 우울을 잊어버리기도 하니까.
우울을 극복하기 위한 나의 방법은 작고 잦은 행복이다.
크지도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작더라도 잦은 행복이 나를 살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