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여도 괜찮은 이유
우리는 많은 것들을 쉽게 좋아합니다.
그림 같은 풍경 사진과 맛있어 보이는 음식 사진은 물론 시시콜콜한 유머 사진에도 '좋아요'를 남발하죠.
'싫어요'는 없습니다. 싫어하는 감정까지 굳이 드러낼 필요도 없고요.
하지만 전 '싫어요'도 괜찮습니다.
청년 장기실업, 저출산 문제, 고령화 사회 등 인구재앙이 머지않았다고 말하는 미친 세상.
이 미친 세상에 미친 사람으로 살면 그게 정상 아닐까요?
하루라도 미치지 않으면 이 각박한 세상 살아가기 힘들 테니.
무한도전에서 나온 어록이 있죠. '정신 차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정신 차리는 게 나을까요, 같이 미치는 게 나을까요.
우울증 환자로 사는 건 꽤 할만해요.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하면 안쓰럽게, 불쌍하게 여기는 시선이 있어요.
그 시선은 재미없지만, 내 옆에 둘 필요 없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거든요.
또 우울증을 고치기 위한 노력은 별 거 없는데, 별 거 없는 걸 하고 얻는 성취감은 짜릿해요.
미친 사람으로 사는 건 꽤 괜찮아요.
'도를 아십니까'를 쉽게 물리치기도 하고 무자비하게 날아오는 전단지를 받지 않아도 되거든요.
미쳤다는 건 귀찮은 것들에서 자유로워질 좋은 핑곗거리가 됩니다.
이쯤 되니 이왕 미친 거 제대로 미쳐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좋아하는 문구가 생각나네요.
Don't be a Sad bitch be a Savage
슬픈 x이 되지 말아라 미친 x이 되어라
정신의학과 예약일 하루 전마다 검사지가 와요.
사회적 회피 및 불안 척도, 피츠버그 수면질 척도, 사회공포증 척도, 무감동 척도, 한글판 스트레스 자각척도 등 현재 나의 상태를 묻는 질문들인데, 워낙 심리테스트 같은 걸 좋아하는 편이라 이것도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검사 결과는 재미로 보는 게 아니지만요.
이번 부정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 척도에 있던 질문 중 하나인데요,
Q.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 별 상관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에 걱정이 된다.
저는 이 질문에 ‘꽤 그렇다’라고 답했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짓말인 것 같고, 매우 그렇다까지는 아닌 것 같아서요.
중간이라도 가렵니다.
저는 타인에 대해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면서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항상 불안했어요.
그런데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더라고요.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도 없고요, 모두를 사랑할 수도 없죠.
'싫어요'도 괜찮아요.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는 이제부터 저를 사랑할 겁니다.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