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우산을 쓰기에도, 그렇다고 우산 없이 걷기에도 애매하게 떨어지는 빗방울. 일기예보를 찾아보니 ‘흐리다 갬’이다. 평소 기상청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지만, 오늘만큼은 살짝 기대를 해보기로 했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왁스를 바르고 거울을 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시 머리를 감고, 머리를 말리고, 왁스를 바르고 거울을 본다. 처음보다 더 엉망이다. 머리만 3번을 감고 나서야 방으로 들어왔다.
옷장을 열었다. 선물 받은 청바지를 입고, 흰 셔츠를 찾았다. 어두운 색 밖에 보이지 않는다. 베란다 건조대에 걸려 있는 셔츠를 들고 다림질을 시작했다. 땀이 나서 선풍기를 틀었다. 다림질을 끝내고 옷을 입으니 온기가 등에 전해져 온다. 다시 옷장을 열었다. 이번에는 최근에 산 카디건이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찾고 보니 얼마 전에 입었다가 빨래통에 넣어둔 것이 생각났다. 어쩔 수 없이 옷장 구석에 걸린 다른 카디건을 입었다.
시계를 보니 10시. 씻기 시작했을 때부터 1시간이 지나있었지만 약속 시간은 아직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거울을 봤을 때, 밖에서 커다란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데이트를 망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불길한 예감은 왜 항상 들어맞는 걸까?
일부러 큰 우산을 챙겼지만 방향을 가리지 않고 부는 비바람에는 별 소용이 없었다. 공을 들여 세팅한 머리는 열 걸음을 채 걷기 전에 산발이 되었고, 서른 걸음 즈음에서는 청바지가 종아리와 격렬한 포옹을 하기 시작했다. 운동화에 물이 차고 빠지는 불쾌한 감촉을 느끼면서 걸음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약속 장소에 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버스 앞을 달리던 차가 빗길에 미끄러져 사고를 냈고, 지하철은 고장이 나 동대문에서만 20분을 서 있었다.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가까운 출구는 공사 중이었고, 덕분에 반대편 계단을 뛰어 올라가야 했다. 그렇게 데이트를 망칠만한 온갖 종류의 불행을 겪은 뒤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30분이 지나있었다. 아, 한 가지 더. 그 사이 기상청의 예보대로 해가 떴다.
“...... 무슨 일 있었어?”
“...... 모르는 편이 나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