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얘기라는 게 뭔데?”
바람에 날린 듯 헝클어진 머리, 기초화장도 하지 않은 맨얼굴. 엎드려 잤는지 볼에 선명하게 남은 베개 자국을 보면서도 긴장이 됐다.
“별 건 아니고...”
“별 게 아닌데 어제 밤새고 푹 자고 있는 사람을 급하게 불러내?”
눈썹이 살짝 들려 올라간다. 위험 신호다.
“별 게 아닌 게 아니라 중요한 일이지.”
“그래서 뭔데?”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얘기를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지만. 지난달에 우리 낙산공원 갔던 거 기억나?”
“대학로?”
“응.”
“그날 엄청 추웠잖아.”
“맞아 그날, 공원 갔다가 내려오면서 바람은 엄청 불지, 길은 미끄러워서 조심조심 걷고, 가로등에 길게 그림자가 지고...”
“서론은 짧게, 결론만.”
“우리 사귀자!!”
“......”
“......”
잠시간의 침묵.
“그게 다야?”
“응?”
“......”
“......”
“뭐 준비한 거 없어?”
“응?”
“노래나 편지나 아니면 뭐 반짝거리는 거라거나.”
“...... 없는데.”
후. 깊이 내쉬는 한숨에 날렸는지 내 심장이 덜컥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자... 아까 건 못 들은 걸로 할 테니까 다시 해봐, 조금 로맨틱하게.”
“...... 오~ 창문을 열어다오~”
“그건 너무 고전이고.”
“...... 이젠 고백할게. 처음부터 너를 사랑해왔다고~”
“오빠 술 못 마시잖아.”
“......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어디서 많이 봤던 거 같은데.”
“......”
“왜?”
나는 눈을 마주치고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지만 한낱 심장 따위야 잠시간 없는 셈 쳤다.
“늘 여행을 하고 있어.”
“응?”
“여행은 아무리 힘들어도 설레고 즐거워. 아주 가끔 아닐 때가 있더라도 대부분 그래. 난 지금도 여행을 하고 있어.”
“어디를?”
오른손을 내 가슴 위에 올렸다.
“여기에서.”
조심스레 그녀의 가슴 위에 올렸다.
“여기까지.”
두근. 잠깐이었을까. 두꺼운 외투 위로 들릴 리 없는 그녀의 심장 소리.
“바보.”
“응?”
“몰라. 내일 다시 해.”
“응??”
“화장이라도 할 시간을 줘야 할 거 아냐, 이 바보 멍충아!”
1) 창문을 열어다오~ :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 줄리엣의 집 아래에서 로미오가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
2) 이젠 고백할게. 처음부터 너를 사랑해왔다고 : 전람회 2집 ‘취중진담’. 술에 취해 실수인 듯 아닌 듯 고백하는 가사와 김동률의 매력적인 중저음이 인상적인 곡. 한때 이 노래로 인해 술 먹고 고백하는 청춘들이 급증했다는 설이 있다.
3)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 시인이 고3 시절 짝사랑하면서 쓴 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자연의 위대함을 한낱 사소한 것으로 나타냄으로써 화자의 사랑을 표현하였다. 영화 ‘편지’에서 한석규 씨가 사랑을 고백하는 데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