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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조 Dec 27. 2022

돈이 없어 병원에 안 간다니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가 몸이 아주  좋은데 돈이 없어 병원에  간다 한다고.  20 원만 카드  쓰면  되겠냐고.

화가 났다. 어떻게 단돈 20만 원이 없어 병원에 안 간다는 말을 해? 여태 뭘 하고 살았길래.

전화를 끊고 20분쯤 , 바로 아빠 차를 타고 종합병원에 갔다.


몇 달 전 일이라 병명은 벌써 잊어버렸지만, 어쨌든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했다(불가능하겠지만). 앞으로는 정말 위험하다고, 진짜로 죽을 수도 있다고 의사 선생님이 겁을 줬다. 피가 굉장히 모자라니 일단 피 두 팩을 수혈받아야 한다고 해서 피검사를 하고 한 팩을 수혈받았는데 엄마 몸이 벌벌 떨렸다. 너무너무 춥다고 했다. 그래서 무슨 링거를 또 추가해 맞았는데, 그런데도 두 번째 팩은 결국 맞다 말고 집에 돌아가야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돈을 거부하는 성향이 강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습관적으로 세뱃돈도 안 받았고, 아빠 친구들이 주는 용돈도 안 받았고, 친구들의 호의도 거절하거나 무조건 갚아야 하는 성격이었다. 나는 베푸는 걸 좋아하면서 남이 나에게 베푸는 마음은 왜 저러지 불안하고 의심스러웠다.


그러다 요즘에 와서야 마음을 고쳐 먹고 사람들의 호의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돈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을 버리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돈은 어쨌든 있으면 좋은 거다. 적어도 없는 것보다는 무조건 좋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거고, 소중한 거다.

엄청나게 부자가 되고 싶어요!라는 건 아니지만, 아프면 언제든지 밤에도 응급실에 갈 수 있고, 치과 치료도 부담 없이 받을 수 있고, 음식이든 옷이든 가성비 크게 따지지 않고 먹고 입고 싶다. 미슐랭 식당에서만 밥을 먹고 명품을 사고 싶다는 게 아니다. 밥을 해 먹어도 건강한 식재료를 돈걱정 없이 사용하고, 한겨울 패딩을 사도 브랜드 신경 안 쓰고 그냥 질 좋은 걸 사고 싶은 것이다.


초등학교 때 꿈은 빵집 주인, 꽃집 주인. 중학교 땐 화가, 고등학교 땐 여기저기 휘둘리며 입시하기에 바빴다. 디자인에 관심이 전혀 없었지만 어쩌다 보니 디자인과만 잔뜩 써냈고, 결국 제품디자인과를 가 편집디자인과 웹디자인 일을 했다. 요령 없이 그냥 시키는 대로 열심히만 했고, 대체로 나쁘진 않았지만 좋지도 않았다.


그리고 30대인 지금 꿈은 자수성가. 무슨 일을 하든 내가 필요한 정도의 돈을 꾸준히 벌고 싶고, 부모님  사드리고,  집도 사고 싶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최종 목표 집을 사는 것이다.  사는  꿈이라고 하면, 누군가는 그게 무슨 꿈이냐며 하찮게 보고, 누군가는 요즘 세상에 꿈이 너무   아니냐고 묻는다. 그렇다는  그렇게  꿈도, 하찮은 꿈도 아니란 거겠지.

그럼 하면 된다. 뭐든 어떻게든 하다 보면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조금은 가까워진다. 어차피 아무것도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니, 계속 절망할지라도 뭐든 꼼지락꼼지락 계속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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