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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조 Mar 06. 2023

불행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잠식당하지 않기를

매일같이 엄마가 죽은 게 너무 화가 나고 짜증 나면서도, 그래도 3년 전 군산에 이사 와서 그나마 좀 자주 보고 좋아하는 것도 사 먹이고 한 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사람 죽은데 다행이 어딨냐 그냥 다 나 살려고 하는 위로지 싶다.


1월 9일에 도서관에서 성공에 관한 책을 빌리고, ‘지금 내가 가진 것 10가지 적고 감사하기’라는 글을 적었다. 그중 두 번째로 적은 것이 ‘부모님이 다 살아계신다.’였다. 그리고 딱 20일 후에 엄마가 돌아가시다니, 나의 감사 따위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구나 싶으면서도, 그래도 아빠라도 살아계신 것에 감사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깊은 마음속으로는 뭐 그냥 다 싫고 쌍욕이 나온다.


하루종일 자는 날도 있고, 아예 못 자는 날이 계속돼 수면제를 안 먹으면 안 되는 날도 있다. 멍하니 있거나 눈만 감으면 방바닥에서 발가벗겨진 채로 심폐소생하는 엄마가 자꾸 보여, 엄마가 그때를 자꾸 다시 살게 될까 봐 벌떡 일어나 좋았던 때의 사진을 보며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한다. 아주 멀쩡한 듯이 잘 먹고 잘 웃고 살고 있지만 사실은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다.


진심으로는 아무런 의욕도 없지만 이러다간 내가 아빠보다도 먼저 죽을 것 같아서, 그럼 그만한 불효도 없을 것 같아서 하루종일 바쁘게 지낸다. 우울한 나를 행복한 나로 자꾸 속여본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


엄마를 아주 좋아했던 어떤 아줌마가, 엄마가 천안에서 군산으로 이사를 오니 매일같이 택시를 타고 엄마한테 놀러 왔다고 한다. 그러다 아예 이사까지 오고, 아빠며 고모들이며 다 같이 만남을 가진 것 같다.

장례식에서 처음 보고는, 이것저것 간섭하고 잔소리를 하는데도 고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 핸드폰을 보니 아주 가관인 것이다. 전화 좀 안 받았다고 사람 사이에 노력이란 걸 하냐, 내가 우습게 보이냐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했다. 그리고 장례식에서도 나에게 말하기를, 설에 딸 좀 보여달라고 그렇게 했는데도 안 보여줘 서운했다고.

이게 상 당한 사람한테 할 소린지도 모르겠고, 왜 명절에 가족도 친척도 아닌 사람의 딸을 보여달라고 떼를 쓰는지도 이해가 안 간다.

내 전화를, 내가 받기 싫음 안 받아도 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엄마는 내 전화를 안 받을 때도 있고 아예 꺼놓을 때도 많았다. 그러면 나도 걱정 돼서 미리 문자라도 남겨놓으라고 하긴 했지만 그런 식으로 사람을 나쁜 사람 취급하며 화를 내진 않았다.


장례는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는 일이다. 내 엄만데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납골함의 위치며, 아빠가 장례식 때 쓴 사진을 태운다니까 그것도 또 뭐래, 엄마 친구라며 온 처음 보는 어떤 여자는 애도할 시간을 주지 않아 정말 소리치고 밀쳐내고 싶은 걸 참느라 힘들었다.

내 나름대로는 어른들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먹기 싫은 밥도 억지로 먹고 쉬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도 쉬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 맞느라 정신이 없는 중에도 10분에 한 번씩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그것 때문에 정말 더 힘들고 죽고 싶었다.

거기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애 빨리 낳아라, 임신한 적이 한 번도 없냐 등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린지.


오는 사람마다 엄마가 갑자기 왜 죽었냐, 어쩜 이렇게 준비할 시간도 안 주고 갑자기 죽냐 이기적이다, 이딴 말들이 바늘보다 더 아팠다.

누가 나 아픈 걸 동네방네 소문내고 죽냐 도대체. 걱정 안 시키려는 배려라고는 생각 안 하냐. 부정적인 생각들이 가득 찼다.

물론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겠지만 그냥 다 듣기 싫고 꼴도 보기 싫었다.


진심으로 감사했던 건 오히려 아빠랑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었다. 우리 집이랑 처지가 같을 게 뻔한데,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다섯 장과 진심으로 애도하는 표정이 정말 감사하고 와닿았다.

그분들은 꼭 따로 챙겨드리고 싶어서 아빠에게 꼭 고기라도 사드리라고 돈도 더 드렸는데, 결국 9,000원짜리 감자탕이 전부였다.


이런 나지만, 독기와 악의를 잔뜩 품은 나지만

그렇다고 타인이 슬프길 바라지는 않는다. 그라도 행복하길 빈다. 고단하지 않았으면, 상처받지 않았으면,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이 더 많았으면. 그렇게 빌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야 당연한 거고, 대화 한 마디 안 해 본 아주 남인 사람 중에도 있다.


일단 당장 오늘을 괜찮게 보내려고 노력하면, 그게 쌓이고 쌓이면 결국은 나름대로는 괜찮은 인생을 살게 되겠지. 일단 지금 당장을 잘 지내려고 노력하자. 그것에만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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