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조 Aug 19. 2022

생명의 눈빛이란, 나를 어쩔 도리가 없게 만든다

살아있는 것. 생명이란, 생명의 눈빛이란 나를 어쩔 도리가 없게 만든다. 아무리 짧은 순간을 함께 하더라도 내가 사는 내내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것이다.


키우는 강아지가 작년 9월에 새끼를 세 마리 낳았다. 사실 태아의 상태가 걱정이었다. 동물병원의 오진으로 약을 잘못 처방받았는데, 그 약이 기형을 유발하는 약이었다. 그래도, 다리가 세 개든 다섯 개든, 눈이 안 보이든 언청이든 제발 건강하게만 태어나주길 기도했다. 하지만 첫째 말고는 몸이 아주 약했다.


둘째는 이틀 만에 죽었다. 내가 탯줄에 실을 감기 전에 엄마 강아지가 조금 과격하게 탯줄을 끊어 피가 팡 터졌었는데 뭔가 감염이라도 된 걸까. 그래도 품에 잘 파고들길래 안심하고 나름 잘 돌보겠다고 방도 아주 뜨끈하게 해 놨었는데 아침에 보니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때 잠을 자버린 나를 굉장히 원망했다. 안 자고 계속 돌봤으면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막내는 태어나자마자 숨을 안 쉬었는데 인공호흡도 계속하고 수건과 드라이기로 한참을 따뜻하게 만져주니 간신히 숨을 쉬었다. 하지만 젖을 전혀 빨지 못해 분유를 사다 먹였고, 젖병도 빨 줄 몰라서 한 방울씩 떨어뜨려 먹여야 했다. 그조차도 계속 코로 나오고 먹는 양도 적어서 한 시간, 두 시간에 한 번씩 먹이느라 몇 주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방도 뜨거워 땀을 뻘뻘 흘렸다. 그래도 엄마 강아지보다 내 얼굴에 온몸을 맞대고 자는 걸 보며 사랑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도 젖을 빠는 힘이 전혀 없었고 갈수록 점점 더 먹질 못하고 하루 종일 배가 고프다고 울던 아이가 언제부턴가 젖을 물려줘도 아예 빨 생각도 안 했다. 먹으면 먹을수록 아팠다. 아픈 게 눈에 보였다. 갑자기 고개가 휙 젖혀질 정도로 몸에 힘이 빠졌다. 대소변도 쉽지 않았고 소변에선 첫째와 다른 묘한 냄새가 났다. 너무 걱정이 되어 병원에 몇 번 갔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그리고 죽던 날, 죽기 몇 시간 전에 간 병원에서 "자연의 순리대로 되는 거죠, 뭐."라는 무심한 말을 들었다. 따뜻하게 해 주려고 보온팩에 후리스까지 해서 갔는데 에어컨 빵빵한 추운 진료실에, 차디찬 테이블에 안 그래도 아픈 아이를 그대로 올려놓고. 내 손이 닿아있다 떨어질 때마다 서럽게 울던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하다. 무서웠던 것이다. 아직 사는 게 뭔지도, 죽는 게 뭔지도 모르는 아가지만 본능적으로 무서웠던 것이다. 그렇게 3주를 간신히 살아내고 떠났다.


눈을 뜨기도 전에 안에서부터 고름이 생겨 첫째보다 눈도 훨씬 늦게 떴다. 그 눈으로 매일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내가 잠깐이라도 없으면 목청이 터져라 울었다. 나만 찾아서 일을 하러 갈 때도 곱게 싸매고 데리고 다니며 세 시간마다 젖병을 물렸다.


아가들이 죽은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슬픔과 분노와 허무함이. 내 인생에 더이상 동물을 키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위해 사는 연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