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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조 Sep 06. 2022

왕따와 인싸는 한 끗 차이

사진이 좋아 스튜디오에서 일을  적이 있다. 편집 디자이너로 들어가긴 했지만 촬영을 도와야 한다는  오히려 나에게  메리트로 다가왔다. 하지만 의욕이 넘친 것에 비해, 나는 그곳에서 바보였다. 거의 왕따였다. 손님 상대도 전혀 못하고, 사진 보정이나 디자인은 어떻게 해도 욕을 먹었다. 심지어는 가장 단순한 사진을 자르는 것까지 구도가 이상하다며 욕을 먹었다. 손님 상대야 워낙 그런 쪽에 재능이 없으니 그렇다 쳐도, 대학  사진 수업에서도 항상 A+ 받았고 사진이라면 대부분 칭찬만 받았기 때문에 충격이 컸다. 거기에  말고는 모든 사람들이 시간 개념이 없었고,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지하에서 하루 종일 맡는 담배냄새와 술냄새, 혼자서 해야 했던 설거지와 청소, 빨래까지 치가 떨릴 만큼 싫어졌다. 결국 1년을   버티고 퇴사하고 말았다. 그때 건강이 너무  좋아져 지금까지 인후염을 달고 산다.


그런데 그 후, 제품 포장부터 상세페이지와 배너 제작, 사이트 관리 및 고객 응대 등 매일 굉장히 바빴던 쇼핑몰에서 나는 달랐다. 하루에 혼자서 상세페이지 다섯 개를 만들 정도로 손이 빠르고, 아이디어가 좋고, 상냥하며, 남들에게 누구보다 도움을 많이 주는 사람이었다. 모두와 잘 지냈다. 바보가 아니었다. 주위 환경과 사람들이 바뀌었을 뿐인데 내 표정과 행동, 말투가 달라졌다. 내가 할 줄 아는 것과 잘하는 것, 못하는 것은 그대로인데 단 한두 달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내가 못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 운이 좋아 좋은 회사와 좋은 사람들을 만나 단 몇 달 사이에 행복해질 수 있었다.

누군가 예전의 나처럼 내가 쓸모없는 사람 같아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뻔한 소리 같아도, 정말로 당신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그러니 누가 뭐래도 나만은 나를 믿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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