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주 Oct 04. 2021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삶

인생의 종착역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한다. 왜 우리는 똑같은 종착역으로 달려가는데 누구는 호화롭게, 누구는 처량하게 살아가야 하는가.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시간이 지날수록 셀 수 없는 물음표의 연속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고민하는 이 순간에도 열차는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을 위해 살고 있는 걸까. 그건 또 아니다. 각자 현재 가고자 하는 열차의 선로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개개인의 삶 자체는 독립적이다.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죽음이라는 종착역 앞에서는 누구나 공평하다. 우리는 한 번의 삶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았다.


고작 이십 대를 보내고 있는 내가 감히 쉽게 삶에 대해 정답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열차에 탑승한 우리는 '왜 그렇게도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 정도는 제기해보려고 한다. 나는 늘 살아간다는 것에 의구심이 들었고, 슬프지만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어가는 일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비단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미래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후회 없이 현재나 즐기자!’


이러한 발상은 ‘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단어가 생겨난 근원이라고   있다. 우리는  번의 주어진 '' 삶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단어이다. 또한 출발선이 같다고 해서 종착역에 같은 시간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불확실한 미래보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멋들어지게 살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발상에서 비롯된 욜로 라이프는 사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다소 위험하고 안일한 생각일 수도 있다. 현재를 즐기는 것은 물론 좋지만, 미래의 전부를 모두 배제하는 것은 미래에 있을 당신이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준비된 자만 선택한다. 따라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공부하고, 돈을 벌고, 일을 한다. 이에 최선을 다 한 대가는 취업에 성공한 직장에서 또 열심히 일을 한다. 참 슬프게도 우리는 미래를 위해 즐길 수 있는 현재를 계속해서 반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욜로보다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더 자주 언급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행복을 멀리서 찾기보다 우리 주변에서 찾자는 말이다.


예를 들어, 퇴근 후 내가 좋아하는 안주와 시원한 맥주를 먹으며 정신없이 바빴던 나에게 보상해주는 것. 정말 소소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확실한 행복이다. 연말에 전기장판 위에 누워 포근한 이불속에서 연말 시상식을 시청하며 맥주를 먹는 것, 친구들을 만나 최근 있었던 일에 대해 수다 떠는 것. 역시 이 모두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우리는 이러한 소소한 행복만 보장된다면 다시 다가올 하루와 미래를 지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어쩌면 인간이 열심히 살고자 하는 것은 삶의 본능 아니면 인간의 숙명이 아닐까 한다. 열심히 해서 성취감을 느끼고, 성장하고, 보람을 느끼는 것은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깊게 새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삶은 결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지만, 광활한 우주 속에서 별 한 점이라도 되기 위해 우리는 그렇게 현재에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면역력을 키워주는 것은 열차에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창밖의 여유로운 풍경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나긴 선로 위의 열차를 움직이는 힘이다.


결론적으로 욜로이든 소확행이든 우리는 그냥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저 잘 살아보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 방법이 아니다 싶을 때는 잠깐 내려서 다른 선로를 택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스스로 이러한 결론에 다다랐을 때쯤 ‘그럼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파생적인 의문이 생겨났다. 최근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시시때때로 이런 고민의 늪에 빠져 살았다. 내가 회사원이 되어 사무실 책상에 앉아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만 보는 모습을 상상하거나 일이 서툴러 상사에게 혼나는 모습, 아니면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하루 종일 미소를 잃지 않는 나의 모습이라든가… '나'의 모습에 어떤 일이 어울릴지 상상 속에서 대입해보았다.


그러나 아직도 이렇다 저렇다 할 만한 결론은 내리지 못한 상태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좋고, 아직은 작지만 이 글을 누가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어떤 삶을 만들어나가는지에 따라 열차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함께 가는 사람들도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좀 더 가치로운 삶을 위해 천천히 나를 돌아보고, 또 차후에 나를 돌아봤을 때 그저 허울뿐인 존재가 아니라 견고한 사람이 되도록 끊임없이 달려가고자 한다. 거창한 말들로 글을 꾸며내는 건 아닌가 싶어도, 조금이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삶의 테두리라도 그릴 만한 도움과 위로가 되었다면, 그걸로 족한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삶이 아닌, 행복을 위해, 삶 그 자체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삶. 그리고 그 끝에는 영원한 행복이 존재하기를 감히 바라본다.




이전 04화 마음의 형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