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도, 내일도 최선을 다 하는
거친 흙바닥에서 걸어온 발자국은 선명히 깊게 남는다. 한 발자국씩 나아가지만 이 길이 맞는지 불안해서 수차례 뒤돌아보고, 심지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부끄러워 과거의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되돌아가려고 애쓰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늘 불안 속에 살아간다. 내가 걸어온 길이 맞는지, 혹시 누구에게 부끄러운 발자국을 들킬까 감추려고 애쓰며 말이다.
하지만 과거의 흔적을 지우려고 하다 보면 결국 뒤로만 가게 될 뿐, 앞으로 되돌아올 때는 또다시 긴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런데도 왜, 어째서 우리는 자연히 희미해져 갈 과거에 직접 찾아가 흔들리며 집착할까.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잠시 거기에 머물러 내 일도, 내일도 잊은 채 주춤하면서.
나 역시 근사한 기억도 아닌데 오늘 했던 일, 오늘 했던 말, 지난 나의 행동들을 곱씹어 보며 실수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가끔 후회를 한다. 잊고 싶은 일들은 잔상처럼 남아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떠올라서 내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 놓아 버린다. 예를 들자면, 유치원 때 그만 속옷에 큰일을 저질러 버린 것, 사춘기 시절 부모님께 뱉은 비수를 꽂는 말들, 술 먹고 내뱉어버린 망언과 행동,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저지른 실수 등이 있겠다. 사실 이것 말고도 더 많지만, 개인적이고도 더 창피한 일들은 그리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여하튼 이런 기억들이 눈 감으면 이미지처럼 자꾸만 떠올라 나에게 무언의 괴롭힘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가끔 이런 잡념 때문에 지금 해야 할 일에도 영향을 받기도 한다. 휴대폰의 앨범처럼 버튼 하나로 완전히 삭제할 수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말이다. 더 큰 문제점은 마치 이미지 안의 나 자신이 그대로 영영 박제된 것 마냥 그 속에 갇혀 미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여전히 나를 그 이미지 그대로 생각하면 어쩌지?’
‘혹시 나를 이야깃거리 소재로 삼으면 어떡하지?’
겉으로는 쿨한 척하지만 의연한 표정 뒤에는 나의 또 다른 얼굴이 숨어있었다. 사실은 복잡한 생각들 때문에 머릿속에서는 태풍이 몰아치고 뒤통수에는 홍수가 났는데 말이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괴롭힐 때면 결국 친구들을 만나 하소연을 늘어놓고 나서야 나의 요동치는 심정을 잠재울 수 있었다. 물론 ‘생각보다 사람들은 너에게 관심이 없다’라는 쉽게 듣는 말은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사실 실질적인 해결책을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이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쯤에는 ‘아니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는 나의 실속 없는 넋두리이니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내가 여러 일들을 겪으며 깨달은 사실은, 실수하고 창피를 느끼기 싫어서 그 상황을 회피하려고만 하다 보면 그 상황 속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조금씩 견뎌 앞으로 나아가면 단단한 사람이 된다. 돌아가지 못하는 과거보다 지금 이 순간, 이 시간 내가 보는 모든 만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몇 배는 더 중요하다. 적어도 나의 경험을 미루어 보았을 때, 과거에 침잠했던 기억들은 스스로 생각해보면 내가 쉽게 포기하고 상황을 회피했던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고, 부족함을 만회하기 보다 피하려고만 했었다. 그런 기억들이 나를 자꾸만 작아지게 만들었고, 후회가 또 다른 후회를 낳았다.
그래서 이제 과거를 찾아가는 일은 추억을 음미하고 싶을 때 앨범을 보며 묵혀 놓은 그때의 감정을 꺼내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자꾸만 주춤하고 뒤돌아보게 되어도 좋다. 그 후회의 발자국을 지우려고 애쓰다 갈 길을 놓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와 같이 조금 피곤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과거에 침체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 없다는 것을 인정하다 보면 현재에 조금 더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되더라. 그리고 다가올 내일에, 지금의 내 일에 두려워 말고 천천히 최선을 다하다 보면 매번 돌아올 오늘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니 파이팅.